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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특별기고] 고령화 시대의 현명한 상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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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A씨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결혼했다. 그러나 두 아이를 낳고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별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남편이 상당한 재산을 남겨줬고, 친정에서도 재산을 상속받아 홀로 두 아이를 열심히 키웠다. 그는 빈둥지증후군(empty nest syndrome)에 힘겨워하다 B씨를 만나 사실혼 관계를 맺게 됐다. A씨는 오랜 사실혼 기간 대부분의 재산을 B씨 명의로 변경해 줬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의식불명이 됐다.

최근 접한 지인의 사례다. 법률적으로는 매우 간단하다. 민법은 피상속인이 사망 당시 보유하고 있는 재산을 상속재산으로 보고, 일차적으로는 피상속인의 유언에 따르되, 유언이 없는 경우 민법 규정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A씨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언 없이 사망할 것이다. 법률상 배우자가 아닌 B씨는 A씨 명의인 상속재산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다만 A씨로부터 이미 명의를 이전받은 재산들은 상속재산에 포함되지 않아 그대로 보유할 수 있다.

자녀들은 억울하다. 어린 시절 아빠가 갑자기 사망했을 때 엄마와 주변분들의 권유로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상속포기 각서에 서명했다. 엄마를 가까이에서 모시고 살고 싶었지만 각자 사정으로 타지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자주 엄마와 연락하고 지냈다. B씨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행복해하는 것 같아서 받아들였다. B씨에게 살갑게 굴지는 못했지만 그 나름대로 예의를 다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엄마의 뇌출혈을 계기로 대부분의 재산이 B씨의 명의로 이전된 것을 알게 됐다. 변호사들과 상담해 봤는데, B씨 명의로 이전된 재산들은 되찾을 수 없다고 한다. B씨가 자녀들에게 이제부터 엄마의 간병비를 부담하라고 하자 왠지 억울하고 당혹스럽다.

고령화 사회는 사회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미칠 것이다. 가족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배우자의 사망으로 남겨진 사람이 새로운 사람과 법률상 재혼하거나 사실혼 관계를 맺게 되는 사례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상속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는 점이다. 상속재산은 속성상 대를 이어 생성·축적·전달돼 온 면이 있어 피상속인 혼자만의 재산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피상속인이 자수성가했다고 하더라도 지인 사례처럼 미성년 자녀들이 상속포기를 하고 이후 생존 배우자가 재산을 임의로 처분한다면 역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는 법이 가족 문제에 개입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고, 자녀들에게 미리 재산을 물려주면 이들이 효도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이제 바꿔야 한다. 지인 사례에서 최초 사망한 배우자가 유언을 남겼거나, 자녀들이 상속 포기를 하지 않았거나, 남은 배우자가 사전증여를 했거나,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 유언을 남겨 놓았다면 어땠을까. 모 연극배우가 배우자 사별 후 재산을 3등분해 두 자녀에게 3분의 1씩 나눠 주고 재혼했다는 인터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동률 대한변호사협회 제1국제이사/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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