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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국민연금, 집중투표제 도입 압박한다…재계 "상법과 충돌"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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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논란 ◆

매일경제

13일 오후 서울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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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기업과 소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이 없는 경우 제한적으로 집중투표제 배제 규정 삭제를 통한 정관 변경의 주주 제안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현재 소수의 기업들만 정관에 도입하고 있는 집중투표제가 확대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13일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공청회를 열고 '경영 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안)'을 공개했다. 안에 따르면 기업의 배당, 임원 보수 한도, 법령상 위반 우려 등과 관련해 비공개 대화, 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 등 절차를 거쳐도 개선이 없다면 국민연금은 정관 변경을 통한 주주권 행사에 나설 수 있게 된다.

특히 쟁점이 되는 부분은 집중투표제 배제 규정을 삭제하는 정관 변경의 주주 제안이다. 집중투표제는 기업이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출할 때 주주총회에서 실시해 표를 많이 얻은 순서대로 이사를 선출하는 제도다. 최대주주 외에 기관투자가나 소액주주들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이사 후보에게 표를 몰아줘 대주주 의사와 관계없이 이사를 선출하기에 용이하다.

이날 공청회에서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주총에서 현실적으로 국민연금이 제안한 안 99%는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기에 이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의 생명은 집중투표제도"라고 평가했다. 국민연금이 2대 주주인 경우에도 대부분의 지분이 10%대인 상황에서 지분을 40% 이상 보유한 최대주주가 제시한 의안을 부결시키기 위해선 집중투표제를 통해 표를 몰아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상법에서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배제하지 않고 있어 재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미 상장사협의회는 국민연금에 한해 '5% 룰(지분을 5% 보유한 주주가 지분 정보를 5일 내 공시하는 제도)'을 완화하게 되면 집중투표제를 위한 주주 제안 절차가 간소화된다는 의견을 금융위에 지난달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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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관훈 선문대 교수는 "집중투표 배제 규정을 삭제하는 정관 규정을 국민연금이 다루면 상법 개정이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압박을 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박재홍 김앤장법률사무소 전문위원은 "찬 반양론이 있어 상법에서 채택이 불투명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라고 하면 거부감이 들 수 있다"며 "기업마다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개별 기업의 사정을 도외시하는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공청회에서는 경영 목적의 주주권 행사에 대해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렸다. 곽 교수는 "국민연금의 최우선 과제는 수익성과 투자 안정성이다"며 "그런데 전문성이나 독립성이 부족한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가 여기에 대해 최선의 결정을 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동구 변호사는 "기업이 상장을 했다는 것은 외부에 많은 정보를 공개하고 간섭을 받겠다는 것"이라며 "기업의 배당 정책, 또는 임원 보수 한도의 적정성, 경영진의 사익 편취 등 이런 것을 판단하는 데 대단한 전문성이 필요하는 게 아닌데도 경영에 방해된다고 하는 것은 기업의 엄살"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외부 견제가 없을 때 기업 오너들의 전횡을 우리는 이미 경험해 왔다"며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나머지 주주들의 의결권이 과도하게 반영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시기와 관련해서도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해외 연기금은 15~20년 전부터 책임투자를 근본 투자철학으로 하고 그것을 다양한 투자 프로세스에 접목시키고 있는데 국민연금은 덩치에 비해 너무 늦은 감이 있다"며 "그마저도 이번 정부의 계획인지 다음 정부로 넘기겠다는 것인지 전반적으로 시기가 너무 먼 미래로 지정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종오 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역시 "2022~2023년에 한다는 말은 안 하겠다는 얘기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며 "책임투자 시기를 2020~2021년으로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은 이날 공청회에서의 의견 수렴을 토대로 주주권 행사와 책임투자에 관한 실무평가위원회 심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후 이달 말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경영 참여 목적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심의·의결할 계획이다.

■ <용어 설명>

▷ 집중투표제 :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방식과 달리,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일부 국가에서 도입하고 있다.

[김제림 기자 / 문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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