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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경제직필]‘소득주도성장’ 그리고 2년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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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이 구체제를 무너뜨렸고 신체제의 2년 반이 지났다? 아니다. 혁명에 걸맞으려면 구체제와 신체제의 뚜렷한 차별이 있어야 한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독재에서 민주로, 부패한 기득권 세력의 숙청, 이런 초법적 변화까지는 아니라도 재벌 해체, 공정한 시장질서의 확립, 관료와 공직사회의 부패척결과 공적 감시기능 정상화 등은 있어야 한다. 그런 변화는 아직 없었다! ‘촛불혁명’은 헌법과 민주적 질서에 따라 이루어진 시민저항이었고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 정부가 탄생하여 그 절반의 임기가 지났을 뿐이다.

경향신문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무성했던 논란이 무색하게 새 정부가 추진했던 경제정책의 실상은 지난 보수정부도 진행했던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강화, 청년 실업과 일자리 정책, 최저임금 인상, 경제민주화와 동반성장 정책 등을 체계화하고 우선순위를 높인 정도라 할 수 있다. 지지했던 쪽에서는 과감한 개혁과 쇄신을 희망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비판보다는 전례 없이 위험한 정책실험인 양 혹은 사회주의 경제로의 체제 전환인 양 무책임한 힐난과 맹목적 색깔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양쪽 다 틀렸다. 무역전쟁과 세계 경제의 침체로 과감한 개혁과 쇄신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였고, 한국 자본주의가 체제 전환의 위험에 빠지는 일도 없었다. 대외적 충격이 경제정책의 전망을 어둡게 했고, 탄핵과 함께 사라졌어야 할 탄핵의 그림자들과 고장 난 정치가 경제의 길을 막고 시간만 허비하는 소모전의 연속, 그 2년 반이 지난 것이다.

경제정책은 시장 안팎의 충격과 요동이 국민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는 경기관리 기능과 근본적 체질개선 및 산업구조 조정으로 국가경제의 잠재력을 높이는 기능으로 구분된다. 불안정한 저층 대기를 뚫고 구름 위로 이륙하여 적정 고도에 접어들면 비행기는 안정적으로 순항한다. 경제의 발전단계에 걸맞은 순항고도가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지금 우리의 발전단계에 걸맞은 순항고도를 찾아 정부의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고 공정경제와 구조조정을 통해 국민경제의 잠재력을 키우자는 것이고 모든 선진국들이 우리와 같은 경제발전단계에서 경험했던 일을 하자는 것이다. 경제성장률, 고용률, 국가채무비율 등 어떤 자료를 봐도 설명되기 어려운 “한국” 경제 위기론을 내세워, 추락하니 이런 정책 기조를 포기하라는 비판은 순항고도를 찾지 말고 불안정한 저고도 비행만 계속하자는 말이다. 세계 경제가 위태로우니 개혁도 구조조정도 없이 현상유지나 하면서 지켜보자는 얘기다. 특히 일부 정치권은 재벌 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으로 회귀하고, 많든 적든 위에서 떨어지는 물이나 받아먹으라는 벌부론(閥富論)을 민부론(民富論)이라 호도한다. 수십년의 경험에서 보면 그것은 민빈(民貧)으로 가는 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유지가 위험을 가중시킨다는 점이다. 중국경제성장이 둔화되어 세계무역량이 정체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2012년 무렵이고 그 이후 보호무역주의 부상과 함께 사태가 더 악화되었다. 자동차산업과 조선업 등 제조업 위기의 전조도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를 덮고 돈 빌려 집 사기를 장려하는 후진국형 건설경기부양 정책으로 현상 유지에 급급했던 결과 가계부채와 수요 위축이라는 부작용만 커졌다. 국가경제는 대외 충격에 더 취약해졌고 대형 조선업체 부도와 자동차공장 폐쇄로 이어졌던 것이다. 건설경기 부양으로 억지로 높인 성장률 1%를 빼면 이미 우리는 1%대 성장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때 후진국형 경기부양을 주창했다면 지금은 더더욱 정부의 재정확장과 적극적 경기관리에 협조해야 한다. 그 내용이 후진국형이 아닌 것은 천만다행이다.

성장률을 올리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재정확장을 통해 근본적인 경제의 체질 개선과 구조 전환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여야가 합심해 모색해야 한다. 발전 잠재력도 높고 대외적 위험에 강건한 체질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그 중요한 축이 사람에 대한 투자다. 줄어드는 인구가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려면 임신에서 출산과 사망에 이르는 전 기간에 걸쳐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갖춰져야 한다. 이를 선심성 공약 정도로 생각하는 잘못된 사고는 고쳐야 한다. 가난한 이웃의 딸과 아들이 한국 경제의 주축이 되어 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생각을 왜 못하는가? 시장질서의 불공정과 노동양극화가 해소되어 국민 삶의 질이 개선되어야 혁신적 창업과 교육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된다. 가계소득을 높여 내수 기반을 확충하고 미래 성장산업에 대한 선도적 투자를 확대한다면 대외 의존에서 오는 위험을 줄이고 추격경제에서 명실상부한 선도경제로 탈바꿈할 것이다. 희망을 갖고 합심해 노력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분배정의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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