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7 (월)

국제인권기구 “북한 어민 강제북송은 국제법 위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고문 뻔한데 보내” 통일부 비판

한국 정부에 관계자 문책 촉구

“진범 북서 잡혀…귀순자 살인 누명”

탈북 영화감독, 북 주민 얘기 공개

중앙일보

지난 8일 동해상에서 북측 인계를 위해 우리 해군에 의해 예인되는 북한 목선. [사진 통일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가 지난 7일 북한 주민 2명을 동료 선원 16명의 살해 용의자로 판단해 강제송환한 것을 놓고 후폭풍이 거세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표적인 인권감시 기구인 휴먼라이트워치(HRW)는 12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한국 정부의) 신속한 북송 조치는 유엔 국제고문방지 협약을 어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HRW는 한국 정부의 송환 조치가 해당 북한 선원 2명을 “학대 가능성”에 노출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필 로버트슨 HRW 아시아담당 부국장은 이 보도자료에서 “북한의 사법체계는 극도로 잔인하며, (이들 선원 2명이) 고문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낸 것은 국제법상 불법”이라며 “한국은 두 사람에 대한 혐의를 철저히 조사하고, 그들이 북송되는 것에 충분히 이의를 제기할 기회를 줬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HRW는 ‘북송된 북한 선원들은 잔인한 범죄자로,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정부 입장에 대해서도 “난민 관련 법에선 제외될 수 있겠지만 인권법에선 난민이든 아니든 고문당할 위험이 상당히 큰 나라로 돌려보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며 “한국은 고문과 그 밖의 잔혹 행위, 비인간적인 대우나 처벌에 반대하는 유엔 협약 당사국”이라고 지적했다. 유엔 고문방지협약 제3조는 고문 위험 국가로의 추방·송환·인도를 금지하고 있다.

HRW는 또 “한국의 헌법 제3조는 한반도 전체에 적용되기 때문에 한국 당국은 (북한 선원) 두 명을 범죄 혐의로 기소할 수도 있었다”고도 밝혔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적시돼 있다. 국제 인권단체가 한국의 헌법을 들어 한국 정부의 송환 결정을 비판한 것이다.

HRW는 이어 “한국 정부는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두 선원의 기본 인권을 침해한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제 송환에 대한 비판에는 탈북자와 국내 인권 전문가들도 가세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13일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땅에 들어오게 되면 의사 표시와 관계없이 대한민국 국민이고, 의사 표시를 하면 그때부터 북한이탈주민이 된다”며 “이번 결정은 불법행위”라고 밝혔다. 1990년대 중반 탈북했던 정성산 영화감독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 주민과 나눈 대화라며 “주범은 김책항에서 잡힌 사람이고 (북송된) 두 사람은 (범행에) 가담했지만 진짜 범인이 잡히자 귀순하기 위해 내려온 것”이라며 “귀순자를 살인자 누명을 씌워 돌려보냈다”고 주장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이규창 인도협력연구실장은 ‘살인 혐의 북한 주민 추방사건 법적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서 “(정부가 추방 근거로 들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보호법은) 북한 주민을 일단 북한이탈주민으로 받아들인 후 북한이탈주민법에 의한 보호 및 정착 지원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취지”라며 “추방 여부에 관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계속되는 논란에도 정부는 “북한 주민들이 합동조사 과정에서 자신들의 범행을 인정했으며, 한국으로 귀순을 희망하긴 했지만 정서적으로 상당히 불안해 했고, 사회에 나갈 경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상황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추방이라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하면서 국민에게 알리지 않는 ‘몰래 북송’을 시도한 데다 선원은 물론 이들이 타고 왔던 목선까지 북으로 보내는 바람에 각종 의혹을 해소할 ‘물증’과 ‘진술’을 국민과 국제사회에 보여줄 방법이 적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 선원의 강제 북송은 정부가 그간 북한을 정의하는 데서 상징적 원칙이자 기본 틀이던 헌법 3조를 현실 정책에선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분명히 한 게 돼 향후에도 논란이 예상된다. 전직 정부 당국자는 “나포에서 송환까지 닷새 만에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혼란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정용수·오원석 기자 nkys@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