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5] 하몬 농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근래 세계 미식의 유행이 된 스페인의 햄 ‘하몬(Jamon)’은 이베리아반도 남서부 지역에서 만들어진다. 축사에서 잠이 깬 돼지들은 동이 틀 무렵 숲속으로 나온다. 방목 필수 조건인 ‘데에사(dehesa·사진)’라고 하는 숲은 그 자격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도토리를 생산하는 참나무가 충분해야 하고, 독수리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울창하게 덮여 있어야 한다. 한 마리당 면적 3000평도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는 자연의 생태계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크기다. 밤하늘에 보이는 별의 선명도도 중요하다. 맑은 공기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다리 부분이 검은 이베리코(iberico) 품종 돼지는 종자부터 먹는 음식까지 철저하게 관리된다. 늦가을부터 다음 해 봄까지 도토리, 나무껍질, 솔방울, 버섯 등 자연에 있는 것만 먹어야 하고 사료를 주면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이베리코 하몬 데 베요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베요타(Bellota)’는 스페인 말로 도토리다. 정들까 봐 기르는 동안 돼지 이름은 붙이지 않는다. 도축은 이산화탄소로 깊은 잠을 재운 뒤 한다. 하몬을 만드는 데는 두 가지 재료만 필요하다. 좋은 바다 소금과 바람이다. 생고기는 소금을 덮은 후 ‘런던’이라고 하는 냉장 창고에 보관한다. 추운 영국 날씨를 풍자해 명명한 공간이다. 염장 후에는 천장에 매달아 이삼 년 정도 건조한다. 이 공간은 ‘성당’이라고 부른다. 뒷다리가 매달린 모습과 좋은 결과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농장 주인은 “좋은 돼지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늦가을은 하몬이 아주 맛있는 계절이다. 입에 넣는 순간 양쪽 침샘이 찌릿하게 반응한다. 크림처럼 녹는 식감, 기분 좋은 흙냄새와 견과류의 풍미, 꽃향기가 입안 가득히 퍼진다. 일반적 상식과 다르게 하몬은 레드와인과 먹지 않는다. 화이트 와인이나 드라이 셰리가 정답이다. “하몬이 다른 햄과 뭐가 그렇게 다르냐?”는 질문에 아주 간단한 대답이 돌아온다. “완전히 다르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