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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위기관리 백팔수(百八手): 101편] 공개되면 문제될 대응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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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기업 위기관리에 있어 필살기(必殺技)란 존재하지 않는다. 위기관리에 기술이나 기교가 크게 의미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위기관리는 시종일관 순리의 흐름 속에서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일부 기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사만의 특별한 기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위기가 발생된 직후 분위기도 그런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저기에서 위기를 잠재울 수 있다는 아이디어들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위기를 관리해 주겠다는 사람도 나타난다. 음모론이나 정치적 술수 때문에 회사가 이 지경이 되었다며 그 실타래를 풀겠다는 사람도 생겨난다.

이데일리

위기가 발생되면 최고의사결정권자 주변에도 흔히 ‘비밀스러운’ 사람들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속삭이기 시작한다. 상황의 맥락을 나름 설명하면서 어떤 키맨을 움직이면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조언도 한다. 나름 의미 있을 것이라는 창조적 대응을 조언하기도 한다. 심지어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도 한다. 위기관리에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글쎄다.

그간 현장 경험을 놓고 보면 그런 속삭임이나 비밀스러움이 실제 위기를 관리하는 데에 있어 큰 도움이 되는 경우는 없었다. 그 이유는 이 세상 누구도 잘못을 잘함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을 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누구도 여론을 손 끝으로 움직여 멀리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신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순리와 거리 있는 조언은 항상 문제가 될 대응과 연결된다. 문제 소지가 있는 기술이나 기교를 조언하기 때문이다.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위기 대응 방식에 대해 의사결정을 해도 문제다. 대응 전략과 방식 지시가 사내 극소수 일부에게 비밀스럽게 하달되는 경우도 문제다. 스스로 방식에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추후 문제가 되더라도 일단 위기는 관리하고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는 위기관리 목적에 반하는 의견일 수 있다. 위기관리를 위한 대응은 해당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함이 목적이다. 해당 위기를 관리하는 대신 또 다른 위기를 만드는 대응은 누가 보아도 적절하지 않다.

걸리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으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반론을 펴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위험하지 않은 대응 방식을 먼저 찾아 해 보는 것이 더 나은 위기관리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한 반론은 적어진다. 구태여 문제 소지가 있는 위기대응에 주로 주목하는 이유를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기업은 실무자들이 최근까지 자사만의 오래된 위기대응 기교를 사적 자리에서 은근히 뽐내고는 했다. 압수수색에 대한 자사만의 여러 대응 방식, 문제가 될 증거들을 자사만의 방식으로 관리하는 체계, 주요 임원의 특수한 보안 의식과 보안을 위한 독특한 행동을 자랑하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다른 기업 실무자들은 혀를 내 두르며 대단하다 감탄했다. 그들의 대응 하나 하나는 여러 해 동안 그 회사가 경험한 숱한 압수수색과 증거 관리, 보안이라는 목적 하에 이루어지는 비밀주의에 기반한 것이었다. 법적 허점과 처벌수위를 분별하여 자사 실익과 비교하는 정교한 체계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듣던 다른 실무자가 그 회사 실무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그런 위기대응 체계가 조폭의 것과 어떻게 다른 지 모르겠습니다. 왜 상장기업이고 떳떳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이 꼭 그렇게 대응해야 할까요?” 이런 지적에 대부분이 고개를 끄떡였다.

자랑하던 실무자는 그런 지적에 “사실 저희도 그런 위험한 대응 방식이 최선일까 항상 고민합니다. 그런데도 회사의 오래된 대응 방식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걸 실무자단에서 거스를 수 없는 거지요.”라 답했다.

절대 문제가 될 위기대응 체계나 방식은 평소에 검토해 하나 씩이라도 없애 나가는 것이 좋다. 문제가 될 것들은 조금만 더 고민하고, 노력해 투자하면 없앨 수 있다. 쉽게 하려 하니 문제가 남는다. 누가봐도 문제될 것 없는 대응 체계와 방식만 가지고 평소 고민해도 위기는 관리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먼저다.

그런 정상적 위기대응 체계와 방식이 수년 수십년 반복되어 정교함을 더하게 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방향이다. 위기관리라고 특별하지 않게, 상황에 처해 순리에 따라 자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나 하나 해 나가는 그런 ‘이상할 것 없는’ 업무라는 생각을 하자. 이상하거나 문제가 될 대응을 조언하는 사람이 이상해 보이는 내부 분위기가 생겨나게 하자. 그것도 하나의 위기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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