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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끊어내라, 그런 벤처가 유니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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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디커플링>

탈레스 S. 테이셰이라 지음/ 김인수 옮김/ 인플루엔셜 펴냄


한겨레

‘Unlocking The Customer Value Chain’(고객가치사슬 해체하기). 이 무슨 소리일까. <디커플링> 원제는 어렵다. 언뜻 재미도 없어 보이고, 경제경영서 독자를 끌 만한 매력도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 언제 적 가치사슬 타령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토록 얄팍하고 오만한 내 판단과 달리 이 책 내공(?)은 대단했다.

지금 비즈니스판에 감도는 감정은 극과 극이다. 너무 무섭거나 환희에 차거나. 개념조차 파악하기 힘든 신기술이 주는 공포와 거대기업이 눈앞에서 몰락하는 절망감. 그런데 그 반대편에는 서부 개척시대 황금을 찾아나선 모험가의 열정이 넘친다. 패기 넘치는 젊은 기업가들이 미국에서, 중국에서, 아니 바로 우리 눈앞에서 단 몇 년 만에 1조원 유니콘기업에 이름을 올린다. 스타트업 지원 정책과 각종 프로그램에 연일 사람이 몰려드는 이유다.

<디커플링>은 이런 열정가에게 황금 광산을 찾는 지도와 같다. 우리가 두려워하던, 또는 동경해온 신생기업이 바로 이렇게 시작하는구나, 이렇게 성장하는구나, ‘로드맵’ 형태로 방향을 제시한다. 거기에 더해 강력한 펀치를 날린다. “오늘날 비즈니스판을 파괴한 것은 신기술이 아니다. 고객이다”라는 일관된 주장이다.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파괴적 기업이 되는 데 신기술은 당장 필요하지 않다. 고객의 불편한 소비활동을 파악해 단계 하나를 끊어내는 센스와 행동이 필요할 뿐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MBA) 교수가 8년간 연구한 끝에 나온 결론이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문과대를 졸업해 출판업에 종사하는 나도, 휴대전화 케이스를 파는 직원도, 게임을 좋아하는 집돌이도, 고객 불편을 예민하게 포착해 ‘고객가치사슬’을 끊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빠르게 시장을 파고드는 신생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책에 나오는 에어비앤비, 트위치, 리백의 스타트업 과정을 보면 창업자가 얼마나 사소하고 단순한 발상으로 일을 벌이는지 알 수 있다.

고객가치사슬은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TV 구매’를 예로 들면 고객가치사슬은 ‘검색-비교평가-구매-사용’이다. 여기서 가치사슬 하나를 끊어낸 용기 있는 자가 있으니 바로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더 저렴하게 물건을 사려는 고객 욕구를 간파해 ‘구매’ 단계 하나를 똑 끊어냈다. 이처럼 단계 일부를 분리하는 것, 끊어내는 것을 디커플링(Decoupling)이라 한다.

전지현 광고 이후 화제가 된 온라인 식료품 배달 스타트업 ‘마켓컬리’를 보라. 세상에 없던 신기술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집에서 요리하고 싶지만 재료 구매가 버거운 고객의 불편을 잡아챈 센스가 돋보인다. ‘메뉴 정하기-재료 구매하기-재료 손질하기-조리하기-먹기’ 단계에서 마켓컬리는 오직 ‘재료 구매하기’ 단계만 잘라서 서비스한다. 이것만으로도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해 성공을 거둔다.

연일 경제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넷플릭스, 쏘카, 우버, 에어비앤비, 야놀자, 트립어드바이저 같은 신생기업은 디커플링에 성공한 전형적인 디커플러(Decoupler)다. 고객 소비활동의 일부만 취하고, 세상에 없던 신기술로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으며, 엄청난 속도로 틈새를 파고들어 어느 순간 시장을 장악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디커플링> 저자 테이셰이라 교수 말처럼 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디커플러가 되었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했고, 그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그렇게 된 것이다.

누군가가 신기술에 집착하는 동안, 경쟁사 분석에 목매는 동안, 정작 챙겨야 할 고객 불편은 가중되고, 열정적인 디커플러는 이런 고객 욕구를 빠르게 낚아채 시장을 장악한다. 시장가치 36조원인 에어비앤비의 광고, “박람회로 호텔방을 못 구하셨나요? 마침 우리 아파트에 빈방이 하나 있어요”를 보자. 이런 아주 소박한 아이디어와 광고 하나로 성공한 사업모델이 시작됐음을 기억하자.

<디커플링>에는 이런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다만 496쪽이란 양에 겁먹지 않았으면 한다. 전세계 수백 개 기업의 생생한 스토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맛에 누군가는 소설처럼 읽을지도 모른다. 사실 참고 문헌 등을 빼면 겨우(?) 460쪽이니 이런 주제에 관심 있다면 주저 없이 탐독해주었으면 한다. 우리 주위에 얼마나 디커플링 기회가 많은지, 세상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경험을 좀더 많은 이와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정아 인플루엔셜 편집자 jeongah.lee@influenti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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