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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오늘의 책]아줌마,아저씨,부장,수험생,알바…'나는 이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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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서울=뉴시스】임종명 기자 = 시인 오은의 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에는 서른네 편의 작품이 담겼다. 시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마무리된다. 모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특정 인물에 대한 시선이 아니다. 그저 '드는 사람', '빠진 사람', '비틀비틀한 사람', '애인', '응시하는 사람', '갔다 온 사람', '서른', '시끄러운 얼굴', '세 번 말하는 사람' 등이다.

어떤 시에서는 자신이기도 하고, 또 다른 시에서는 자신이 바라보는 이가 주인공이다. 이들 모두 대단히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정겹고 낯설지 않다. 사람을 표현하는 속에 후회, 환희, 선호, 기쁨, 부끄러움, 분노 등의 감정들도 묻어난다.

그래서 어디선가 겪어본 듯한 상황을 마주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 때의 기억과 시인의 표현을 비교해보는 것도 감상 포인트다.

오은 시인의 시는 말놀이(언어유희)로 가득하다. 어릴 때부터 단어들을 이렇게 모아보고 저렇게 떼어보며 노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한 때 평단에서 자신을 말놀이, 언어유희, 말장난이란 테두리 안에 가두는 것 같아 고민하던 때도 있었을 정도다.

'1교시에는 발표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방과 후에는 고백하기 위해 꽃을 들었다 // 공부하기 위해 샤프를 들었고/가르치기 위해 분필을 들었다 (중략) 나타내야 하는 마음이 / 달성해야 하는 마음이 되었다 // 마음먹고 응시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던 내가 // 마음잡고 떠나가기 위해 차표를 들었던 너를 만났다' (드는 사람 중)

수록 작품 중 '드는 사람'을 보면 운율에 맞춰 가며 각종 상황에서 자기만의 무언가를 '드는' 사람을 담아낸다.

'도시인'이란 작품에서는 '가로지르며 몇 개의 금을 밟는다', '출근도 하기 전 오늘도 결승선을 넘었다'라는 표현으로 횡단보도를 그린다던지, '훗날을 기약하는 마음으로 갈아탄다', '막히지 않기를 / 이따금 숨 고를 수 있기를', '땅 아래로 들어가 / 강 위를 달리기도 한다'라고 지하철을 묘사한다.

그렇다고 말놀이가 전부인 것도 아니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대상을 표현한다.

'일류학'이란 시는 '인류학과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일류학과였다'는 말놀이로 시작한다.

하지만 '올라서기 위해서는 밟아야 한다. 남을, 뒤를, 남의 뒤를', '그는 올려다보는 법이 아닌 내려다보는 법만 가르쳤다', '눈이 아직 초롱초롱한 아이들에게는 색안경을 씌웠다', '맹목으로 남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등의 문장으로 세태를 꼬집기도 한다.

결국 시인은 다양한 사람을 표현하면서도 그 사이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많고 많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물음표를 자아낸다.

시집의 제목은 '나는 이름이 있었다'이다. 작가가 표현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들여다보고 나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급기야 'OO'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유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이름이 있지만 일상 속에, 그리고 과열 경쟁에 파묻혀 지내다보면 다른 이름으로 불릴 때가 많다.

누구의 아내 또는 남편, 누구의 엄마 또는 아빠, 모 대리, 모 과장, 모 부장, 알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 공무원 시험준비생, 아저씨, 아줌마 등이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힘껏 쫓았던 목표 달성을 위한 레이스를 마쳤을 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휴식같은 시집이다. 108쪽. 1만원.

jmstal0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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