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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녹색세상]제주공항과 제주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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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의 하나다. 1~2분에 한 대씩, 거의 쉴 새 없이 항공기가 뜨고 내린다. 이착륙 지연은 일상이다. 지난해 제주공항 이용객은 3000만명에 달했고, 국토교통부는 2045년에는 이용객이 4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현재의 공항으로는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 공항을 신설하면 더 많은 사람이 제주에 올 것이고, 그만큼 경제적 효과도 커질 것이다. 대부분의 운항 노선을 제주에 의존하는 지방 공항들도 활성화될 것이다.” 제2공항 건설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논리다.

경향신문

제주공항의 수용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 공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사전타당성조사를 의뢰한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기존 공항의 개선과 확장으로 미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용역사업 자체와 보고서가 수년간 은폐되었다는 것이 지난 5월 드러나면서 의문은 증폭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제주공항은 제주도에 있다는 사실과 그 함의를 외면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지금 ‘진짜’ 문제는 제주공항의 수용력이 아니라 제주도라는 ‘섬’의 수용력이다. 제2공항은 제주공항이 아니라 제주도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받을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제주는 이미 사회적, 환경적 수용력에서 한계에 이르렀다. 2005년에 500만명 정도였던 관광객이 2015년에 1500만명으로 급증했다. 제주도보다 넓은 하와이나 오키나와의 연간 관광객 900만명보다 훨씬 많다. ‘오버투어리즘’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제주도의 현실을 묘사할 때 으레 등장하는 말이다. 공항을 나서면 교통난과 주차난이고, 거의 언제나 ‘공사 중’이다. 쓰레기매립장은 포화상태이고, 매립하지 못한 쓰레기는 노상에 방치되기 일쑤다. 지난 3월엔 쓰레기를 필리핀에 불법 수출했다가 들통이 나서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제주하수처리장에서 정화하지 않은 오폐수를 제주 앞바다에 무단 방출하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제주에 사람이 너무 많다. 제주공항보다 제주도가 견디질 못한다. 그런데 공항은 하나 더 지을 수 있어도, 제주도를 하나 더 만들 수는 없다. 기존 공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서, 제2공항 건설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악화이고 확대이다. 지금도 숨이 차 헐떡이는 사람의 숨통을 조이는 격이다. 이렇게 가면 제주에 지속 가능한 미래는 없다.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는 현 정부의 공약이다. 공약이 아니라도, 사회의 안전과 지속 가능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제주의 진정한 안녕과 발전은 공항의 확대가 아니라 섬의 한계를 존중할 때만 가능하다. 제2공항 문제는 ‘성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성장은 무조건 좋은 것인가?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인가? ‘거인증’은 성장호르몬의 과다분비로 생기는 질병이다. 한계 없는 성장은 당사자에게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준다. 우리 사회의 성장호르몬은 적정한가? 기후위기와 쓰레기를 비롯해 ‘과잉’의 징후는 이미 도처에서 넘쳐난다.

지금의 인구만으로도 힘든데, 제2공항으로 드나드는 사람이 늘어나는 그만큼 제주 주민의 삶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제주의 자연과 생활환경은 더 많이 훼손될 것이다. 관광객들은 망가진 제주의 모습에 실망하고 사람에게 치인 채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공항 건설인가? 공항 건설로 누가 혜택을 보는가? 반짝 경기라도 아쉬운 정부인가? 토목건설 업체인가? 공군기지가 필요한 건가? 제주도민 대부분이 찬성하는 ‘공론조사’는 왜 거부하나? 정부는 왜 합리적인 비판에 눈과 귀를 막고 결론을 미리 정해놓은 듯 밀어붙이기만 하나? 이렇게 제2공항 사업은 의문투성이다. 그리고 의문을 해소할 책임은 입만 열면 공정과 소통을 강조하는 정부의 몫이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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