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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취재일기] 국민연금은 ‘나쁜 기업’ 손보는 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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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국민연금 받을 거란 기대 안 해요. 제가 노인이 될 때쯤 고갈된다잖아요.”

5년 차 직장인 이 모(32) 씨의 말이다. 그는 매달 국민연금 보험료로 20만원가량을 낸다. 그러면서도 노후에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씨처럼 이런 불안감을 가진 이들이 드물지 않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0.92%의 운용 수익률을 기록했다. 세계 금융위기를 겪은 2008년(-0.18%) 이후 첫 마이너스(-) 수익률이자 사상 최저 수익률이다. 지난해 스튜어드십코드(국민연금이 투자한 회사의 집사 역할을 하는 것) 도입 같은 기업 옥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국민연금은 708조원(8월 말 기준)이다. 절반(347조원)은 운용 수익이다. 보험료율(9%) 인상 얘기가 나오면 나라가 들썩이지만 실은 운용만 잘해도 인상 폭을 확 줄일 수 있다. 운용 수익률 1%포인트 올리면 보험료율을 2%포인트 올린 효과를 낸다.

보건복지부가 13일 공개한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와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이 투자하는 기업이 ‘나쁜 짓’을 해서 기업 가치를 떨어트릴 것 같으면 칼을 빼겠는 것이다. 배당을 적게 하거나 대표이사가 횡령·배임을 저지른 기업을 나쁜 기업으로 보고 비공개 대화, 블랙리스트(중점관리기업) 선정 등의 조처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이사 선임·해임 요구를 한다.

환경·사회적 가치·기업 지배구조를 평가해 나쁜 기업은 투자 리스트에서 뺄 수도 있다. 운용 수익 극대화를 위해서란다. 복지부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 캐나다 연금(CPPIB) 등이 이렇게 한다”고 설명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근본 바탕이 다른 점은 말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꽉 쥐고 있다. 기금운용위원회가 전권을 휘두른다. 위원장은 복지부 장관, 위원 5명이 정부 차관이다. 이번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의 최종 결정은 기금운용위 몫이다. 이런 구조에선 뭘 해도 ‘기업 손봐주기’ ‘연금 관치’ 논란을 피해가기 어렵다. 지난해에는 청와대 장하성 전 정책실장이 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CIO) 인선에 개입했다가 큰 사달이 났다. 다른 나라는 독립된 전문가 조직이다. 기금 논리 외는 개입하지 않는다.

곽관훈 선문대 교수의 고언이다. “국민이 국민연금에 돈을 맡긴 이유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아니라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서다. 기금의 안정성·수익성 대신 경영 참여나 지배구조개선 자체가 목적이 되는 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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