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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매경데스크] 17대 국회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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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여성으로 국회 첫 정보위원장이 된 이혜훈 의원에게 내년 총선에서 정치 개혁이 이뤄질 수 있을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대뜸 2004년 자신이 처음 금배지를 달았던 17대 국회 얘기를 꺼냈다. "그때 여의도에는 초선 의원들이 정말 많았고 또 다들 열심히 했어요.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40대에 정치에 입문한 분들이었지요. 이분들과 열심히 노력하면 정치 개혁도 이뤄지겠구나 하는 희망이 있었지요."

이혜훈 의원은 자신과 함께 17대 국회에 처음 등원했던 의원들을 기억해냈다. 유승민, 나경원, 우상호, 이인영, 박영선, 조정식, 정두언, 진수희, 조경태, 심상정, 우원식, 김현미, 전여옥, 노회찬. 지금은 정부와 여야 정당에서 중역이 됐거나,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했던 기라성 같았던 정치인들의 이름이 차례로 소환됐다.

내친김에 17대 국회의 초선 의원들 자료를 찾아봤다. 그랬더니 이혜훈 의원의 당시 회고가 틀린 게 아니었다. 2004년 4·15 총선을 통해 탄생한 17대 국회는 전체 의원 299명 가운데 무려 187명의 초선이 금배지를 달았다. 비율로 따지면 무려 62.5%에 달한다. 2000년대 이후 출범했던 16대(40.7%), 18대(44.5%), 19대(49.3%), 20대(44.0%)는 초선 의원 비율이 모두 40%대에 머물렀지만 17대 국회만 유독 60% 넘는 비율을 기록했다.

17대 총선 직전 여권은 열린우리당 창당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격변을 겪으면서 이른바 386 출신 정치 신인들을 대폭 기용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도 '차떼기당'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진 의원 물갈이와 개혁 공천을 단행했다. 여야의 이런 구도 속에 초선 의원 비율이 60%를 넘는 '개혁 국회'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초선들은 의정활동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는다. 17대 국회 막판 한 언론사가 법안 발의 횟수, 발의 법안 통과 횟수, 본회의 출석률, 국정감사 모니터단 수상경력 등 4가지 계량화된 지표를 토대로 299명 의원의 4년간 의정활동을 평가한 결과 상위 1~10위 의원 가운데 초선 의원이 무려 9명을 차지했다. (참고로 상위 톱10 가운데 유일하게 초선이 아닌 의원은 당시 재선 의원이던 이낙연 현 국무총리였다.)

21대 총선이 불과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 각 정당도 공천 심사와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온갖 부끄러운 기록을 남긴 여야 정치권이 유권자들에게 속죄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세대교체를 통해 참신하고 개혁적이면서도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에게 정치 참여의 기회를 최대한 많이 부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의 미래가 달린 청년 입법, 청년 정책은 여야 정당들이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이 원하는 정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2030세대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0% 가까이를 차지하지만 정작 현재 국회에는 20대 의원은 한 명도 없고, 30대 의원도 단 3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30대 의원인 정은혜(더불어민주당)·신보라(자유한국당)·김수민(바른미래당) 의원은 모두 내년 총선에서 재선이 불확실한 비례대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공천 물갈이가 단순히 '숫자 늘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20대 국회도 나름 물갈이를 단행했다. 하지만 현재 초선 의원 중에서 미래 정책 비전이나 지도력을 갖춘 정치인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17대 국회의 추억이 더욱 그리워지는 이유다.

여야 정치권은 왜 뼈를 깎는 개혁 공천이 필요한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기득권에 안주하며 밥그릇 싸움을 벌인다면 '정치 혐오'에 지친 유권자들로부터 철퇴를 맞을 것이다. 지금 우리 정치에 희망이 안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미래를 짊어질 수 있는 젊고 능력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채수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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