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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윤평중 칼럼] 자유한국당에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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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게모니 능력 상실해 권력 쟁취 못하는 정당

정부·여당 실수에만 기대는 반사정치론 정국 주도 불가

개혁 보수로 진화하고 중도로 지평 넓혀야

조선일보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문재인 정권 2년 반은 총체적 실정(失政)의 연속이었다. 임기 반환점을 지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겸허한 자기 성찰은커녕 후안무치한 자화자찬으로 국민적 분노를 키우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팬덤에 가까운 강력한 고정 지지층으로 민심 이반의 강풍을 결사적으로 막아내고 있다. 제1 야당이 운신(運身)할 정치적 공간을 극대화할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정부·여당을 떠나간 민심조차 자유한국당을 기피한다. 한국당은 부동(不動)의 비(非)호감 정당 1위다.

한국당은 이미 오래전에 헤게모니 능력을 잃었다. 대중의 자발적 지지를 창출함으로써 권력을 쟁취하는 헤게모니 능력은 정당의 존재 이유이다. 헤게모니를 상실한 불임(不姙) 정당에 먹고살기 바쁜 보통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리 없다. 황교안 대표가 문 정권의 '총체적 폐정(弊政)'을 질타하면서 민부론과 민평론을 설파하자마자 허공에 흩어지고 말았다. 수권 능력을 잃어버린 한국당이 발화자(發話者)이기 때문이다. '문 정권이 자유와 정의, 공정을 무너트렸다'는 한국당의 비판은 옳지만 사회적 울림이 전무하다. 퇴행적 지역감정과 적대적 양당정치에 기생해 정의와 공정을 파괴해 온 한국당의 발언이기 때문이다.

제1 야당으로선 천금 같은 기회였던 조국 사태를 한국당이 흘려보낸 것도 무능의 소치만은 아니다. 한국당이 지금처럼 헤매는 데는 역사구조적이고 정치사상적인 배경이 있다. 사실 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함께 사라졌어야 할 수구 정당이다. 합헌적 국법 질서와 시민들의 일반의지로 진행된 탄핵은 박근혜의 사당(私黨)이던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적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결국 대중은 한국당이 대표하는 권위주의적 박정희 패러다임에 철퇴를 가함으로써 수구 정당에 대한 정치적 신임을 철회한 것이다.

정치 이념적으로 자유한국당엔 '자유'도 부재하고 '한국'도 없다. 한국의 수구 보수는 냉전반공주의와 천민자본주의를 자유민주주의의 미명(美名)으로 분칠해왔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을 내세워 양심과 사상의 자유나 기본권 같은 자유주의의 핵심 이념에 적대적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당이 줄곧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근본 가치를 외면해왔다는 사실이다. 공화정의 핵심은 법치주의와 성숙한 시민 정신을 통한 공공성(公共性) 구현에 있다. 공화정 지도자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앞장서는 까닭이다. 그런데 탄핵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탄핵 이후에도 한국당은 공화 정신을 거부하는 무책임한 행태로 일관해왔다.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정을 배척한 자유한국당은 국익보다 당파적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수구적 이익집단으로 각인되었다.

한마디로 한국당은 지나가버린 과거를 상징한다. 문 정권이 실정을 거듭하고 있지만 진취적인 한국인들은 숨 막혔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탄핵 직후 당명을 바꿔 달았지만 내용적으론 전혀 달라지지 않은 수구 세력을 국민이 신뢰할 리 만무하다. 그게 한국당의 현주소이다. 합리적 보수와 중도로 외연을 넓혀 미래로 나아가야만 승리를 기약할 수 있는 선거판에서 한국당의 한계는 치명적이다. 정부·여당의 실수에 기대는 한국당식 반사(反射) 정치로는 정권 획득은커녕 정국 주도조차 불가능하다. 조국 사태가 그 뼈아픈 증거다.

민주주의는 국정 운영 결과를 선거로 심판하는 책임정치이다. 중간선거인 총선에선 정부 여당의 실정을 묻는 회고적 투표가 강세여서 집권 여당이 불리하다. 하지만 국민적 신망을 상실한 좀비 정당으로 전락한 한국당이 이런 통설을 위협한다. 역설적이게도 문 정권의 폭주와 민주당 장기 집권을 가능케 하는 최대 동력을 시대착오적인 제1 야당이 제공하고 있다. 민주당의 선거 승리를 돕는 최대 원군은 수구 정당 한국당의 존재 그 자체인 것이다. 적대적 공존 관계인 한국당과 민주당, 적대적 공생 관계를 맺은 '문빠와 박빠'가 민주공화국을 위협하고 있다.

수구의 틀을 떨쳐내지 못한 한국당은 지역 정당으로 축소되어 소멸할 것이다. 개혁 보수로 진화하고 중도로 지평을 넓히는 창조적 파괴만이 한국당을 구원한다. 자유한국당이 자유와 공화를 회복해야 나라의 앞날이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통합해 미래로 가는 정책 정당만이 민심의 절규에 응답할 수 있다. 한국당이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현대사가 증명한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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