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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조국스러운' 검찰 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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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관심 분산되는 수능날, 비밀통로, 8시간 진술거부

변호사 통해 "의혹 해명하기 구차하다, 법정서 가릴 것"

조국, 후보·장관때 4차례나 "수사 협조" 한다더니…

조사 시작되자 "진술 거부권 행사" 일절 답변안해

법무장관때 급조한 공개소환 금지 1호 수혜자는 정경심, 2호는 본인

낮 휴식시간에 텔레그램 접속도

조선일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4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검찰이 지난 8월 조 전 장관 일가(一家) 수사에 착수한 지 79일, 조 전 장관이 장관직에서 사퇴한 지 한 달 만이다. 이날은 대학수학능력 시험일이었다. 조 전 장관이 여론의 관심이 분산되는 이날을 본인의 조사 날짜로 택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날 오전 9시 35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8시간 조 전 장관을 조사했다. 조 전 장관의 모습은 이날 언론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 '비밀 통로'를 통해 곧바로 조사실로 올라갔다. 조 전 장관 측이 이런 '비밀 소환' 방식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가 법무부 장관일 때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밀어붙인 '공개 소환 금지'의 혜택을 본인이 본 것이다.

그는 이날 조사가 시작되자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검사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법무부 장관일 때 "검찰 수사에 성실히 협조할 것"이라고 했었다. 그는 검찰 조사를 마친 5분 뒤인 오후 5시 35분 기자단에 미리 준비한 입장문을 보냈다. 그는 입장문에서 "저와 관련하여 거론되고 있는 혐의 전체가 사실과 다른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일일이 답변하고 해명하는 것이 구차하고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법정에서 모든 것에 대하여 시시비비를 가려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고 했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을 몇 차례 더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준비한 질문을 다 하겠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검찰이 여러 증거를 갖고 있을 경우 조 전 장관의 진술 거부는 본인에게 되레 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조 전 장관은 14일 새벽 일찌감치 기자들을 피해 집을 나섰다. 그가 사는 아파트 주민들은 "조 전 장관이 이른 아침에 누군가 모는 파란색 차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고 했다. 조 전 장관은 자기 변호사 사무실로 이동해 사건 협의를 한 뒤, 오전 9시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이 이날 출두한다는 사실을 언론에 미리 알리지 않았다. 피의자 공개 소환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최근 발표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 때문에 출입 기자 수십 명은 이날 아침부터 서울중앙지검 청사 1층 현관 앞에 진 치고 있었다. 그가 '비밀 통로'로 올라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대기하던 기자들 사이에서 탄식이 나왔다.

검찰은 그동안 "비공개 소환은 소환 일시를 미리 언론에 알리지 않는 것일 뿐"이라며 "모든 피의자는 1층 현관으로 들어오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그런데 조 전 장관은 그의 아내 정경심씨와 마찬가지로 '비밀 통로'를 이용했다. 특혜 소지가 큰 것이다. 법조계에선 "조국이 급조한 검찰 개혁의 수혜를 조국이 누렸다"는 얘기가 나왔다. 조 전 장관은 법무부 장관일 때 공개 소환을 금지하는 내용의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조국 본인과 가족의 소환에 대비한 셀프 개혁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법무부는 "조국 장관의 가족 수사와는 무관하다"고 반박했었다. 한 평검사는 "결국 조국 검찰 개혁의 1호 수혜자는 아내 정경심씨, 2호 수혜자는 조국 본인이 된 것"이라고 했다.

조 전 장관이 이날 진술을 거부한 것을 두고도 예전에 그가 했던 말들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많다. 그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일 때나 장관이 되고 나서도 4차례 이상 공개 석상에서 '수사 협조'를 말했다. 지난 9월 국회 기자 간담회에선 "검찰 수사에 당연히 성실히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직후인 2017년 3월엔 자기 소셜미디어에 "피의자 박근혜, 첩첩이 쌓인 증거에도 '모른다' '아니다'로 일관. 구속영장 청구할 수밖에 없다"고 한 바 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자기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 앞에서 '아니다'라는 말도 하지 않고 아예 침묵한 것이다.

그는 이날 휴식 시간에 소셜미디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으로 추정되는 이날 오후 1시 3분쯤 휴대전화로 보안 메신저인 텔레그램에 접속한 기록이 있다. 그는 이날 오후 7시 20분 누군가 운전하는 검정 제네시스 차량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갔다. 법조계 인사들은 "역대 정권 실세들 중에서도 가장 여유롭게 검찰 수사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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