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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손관승의 리더의 여행가방] (65) 몽마르뜨 언덕에서 되새기는 'Stay hungry'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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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유럽은 낮 시간이 더 짧다. 높은 위도 때문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행선지를 결정하는데 다른 그 어느 때보다 더 신중해지는 계절이다. 제한된 자원으로 보다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법에 익숙해진 리더들이라 하더라도 여행지가 파리라고 한다면 그 선택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출장업무가 마무리 된 뒤 반나절 틈이 생겼다면 파리에서 어느 곳이 좋을까?"

조선비즈

성(聖)스러운 것과 성(性)스럼의 두 극단이 존재하는 매력적인 장소 몽마르뜨 언덕은 늦가을이 가장 방문하기에 좋다./사진=위키피디아



이 계절에는 무조건 몽마르뜨 언덕이다. 자칫 상투적인 것처럼 들릴 지 모른다. 하지만 때로는 진부함 속에서 해답이 있는 법이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파리지만, 늦가을이 몽마르뜨 언덕에 오르기에 가장 좋다.

이곳의 랜드마크와 같은 사크르쾨르 대성당이 우뚝 서있는 정상이라고 해봐야 해발 128m의 나지막한 언덕에 불과하지만, 막상 지하철 역에서 나와 이곳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계단과 만나야 한다.

뜨거운 태양이 기다리고 있는 한여름과 삭풍이 몰아치는 한겨울은 피하는 게 좋다. 적당히 차가운 기운과 자유의 바람이 교차되는 이 계절이 몽마르뜨 언덕의 진수를 만끽하기 가장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몽마르뜨를 즐기는 최선의 방법은 걷고 또 걷는 것이다. 물론 가파른 언덕을 올려다 주는 교통수단으로 푸니쿨라 같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여행은 목적지 도달이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기는 데 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은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육체의 두발로 걸어 다니던 시대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데, 이곳이 특히 그렇다.

언덕 주변의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눈에 뜨이는 게 있다.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이다. 함께 올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외로움을 즐기는 이들이다. 그들은 도시의 보헤미안들이다.

일상생활의 빡빡한 스케줄에 치이고 많은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지친 도시인들은 휴가를 내서 그렇게 혼자가 되려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다. 다른 측면에서는 소비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여행상품도 그렇고 출판도 그러하다. 혼자와 외로움, 골목길과 걷기를 겨냥한 상품이 잘 팔린다.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일수록 더 그렇다. 반면에 비슷한 생각이나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느슨한 연대와 커뮤니티도 점차 활성화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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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는 홀로 골목길 인문여행의 원조와도 같은 곳이다. 단체관광객이 붐비는 대로보다 호젓한 이면의 골목길이 매력이다./사진=위키피디아



몽마르트 언덕은 혼자와 외로움, 자유, 그리고 느슨한 연대라는 이 모든 문화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예술적이면서도 코스모폴리탄적인 장소이며, 골목길 인문여행의 원점이다.

프랑스의 정치가 격변으로 치닫던 1871년, 몽마르뜨는 파리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스스로를 가리켜 ‘라 꼬뮨(La Commune)’이라 불렀다. 자치 공동체란 뜻이다. 비록 그 기간은 3개월에 불과했지만, 덕분에 많은 자유영혼을 가진 예술가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다.

피렌체에서 위대한 르네상스가 탄생했던 것처럼 몽마르트 언덕에서 인상주의라는 또 다른 위대한 시기를 낳았다.

그 중의 한 명이 빈센트 반 고흐다. 26살 뒤늦은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고흐는 33살의 나이에 파리의 동생 집에 머물면서 새로운 색과 선, 구도에 눈을 떴다.

그리고 2년 뒤 남쪽 아를에서 비로서 그의 잠재되어 있던 열정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게 되는데, 몽마르뜨 언덕은 고흐에게 희망의 정거장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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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이며 조각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사진=위키피디아




"제가 초상화를 그려드릴까요?"

모딜리아니의 그 한 마디에 모델보다 더 멋진 질베르트란 젊은 여성이 스스로 무너졌다고 하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곳이 바로 테르트르 광장이다. 거리의 화가들로 가득한 그 광장 모서리 어디선가 잘생긴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얼굴이 불쑥 나타날 것 같다.

선천적으로 부르주아의 기품을 지녔으면서도 마지막 보헤미안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초상화 속의 여성들은 하나같이 목이 길다. 낯을 심하게 가리고 부끄러움도 많았던 이탈리아 남자 모딜리아니가 파리에 와서 처음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은 피카소의 충고 때문이었다.

"당신은 몽마르뜨 언덕에서 살아야 할거요. 마들렌느나 오페라 부근에는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할 일이 정말 아무것도 없소. 드가조차도 오페라 근처에는 살지 않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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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화가들이 무명시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초상화를 그렸던 테르트르 광장. 미래를 꾸는 예술가들의 중간 정거장이다./사진=위키피디아



모딜리아니가 몽마르뜨에서 술과 여자에 젖던 생활을 청산하고 몽파르나스로 내려와 예술에 몰두하게 된 것은 우아함과 관능의 두 매력이 복합된 영국여인 베아트리스 헤이스팅스를 만나게 되면서부터다. 헤어지기 직전 그녀의 이 한마디가 잠자던 그의 예술적 재능을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고 하던가?

"그림을 그려요. 당신은 화가니까!"

그렇다. 자신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을 글을 써야 하고 비즈니스 하는 사람은 비즈니스에서 보람을 찾는다.

예술가의 위대한 창작을 위해서는 혼자와 독립정신이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커뮤니티다. 바토 라부아(Bateau Lavoir)는 그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올라온 갓 스무 살 젊은 청년 피카소가 둥지를 튼 매우 허름한 스튜디오였다.

흔들거리는 문짝에 피카소가 하얀 분필로 ‘시인들의 집합소’라고 썼던 그곳에는 피카소 이외에도 앙리 마티스, 조르쥬 브락크 같은 위대한 화가들이 있었다. ‘세탁선’이라는 뜻의 ‘바토 라부아’라 작명했던 시인이며 화가였던 막스 자콥도 주요 멤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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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의 ‘바토 라부아’. 바로 이곳에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란 걸작이 탄생하였다. 내부는 관람금지다./사진=위키피디아



파리라는 대도시의 화려함 이면에 가려진 빈곤과 비참함을 목격하였으며 질병과 성병이 가득한 위선의 도시를 목격했다. 친구들끼리 시간을 교대해가며 침대를 사용했을 정도로 가난과 추위와 싸워야 했던 피카소와 친구들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1907년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걸작이 탄생하게 되니, 20세기 현대미술의 시작이라는 평을 듣는 ‘아비뇽의 처녀들’이다. 지금은 자유영혼을 추구하는 이들의 순례지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난방장치조차 없이 닭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다. 비록 내부 관람불가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하고 부를 축적한 이들조차 이곳을 찾는 이유는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배고픈 정신(Stay hungry)’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배고픈 정신이야말로 모든 창조력의 진정한 원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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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사진=위키피디아




그들은 육체적 허기와 정신적 갈증을 느낄 때면 근처 술집 ‘라팽 아질’(Lapin Agile)에 몰려가 떠들고 마시며 예술의 본질에 관해 토론을 하였다. ‘날렵한 토끼’라는 뜻을 가진 곳으로 피카소가 1905년에 그린 그림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물론 포도주도 마셨지만 당시 예술가들의 술은 압생트(absinthe)였다. 고흐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악마의 술이자 창작의 술, 혹은 보헤미안의 술이다. 하지만 이제는 논란이 되던 성분을 제거했다고 하니 파리에서 흔한 와인 말고 독한 술 압생트 한잔 주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미니정보] ‘예술가들의 술' 압생트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사크르쾨르 대성당이 있는 정상 부근에는 언제나 인파로 붐빈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 혹은 미래가 막막할 때 우리는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본다.

이곳은 성(聖)스러운 것과 성(性)스럼의 두 극단이 존재한다. 예술과 탐욕, 유명과 무명, 가난과 부유함, 성공과 좌절이 뒤섞여 있다.

"자기 안에 혼돈을 지녀야만 춤추는 별 하나를 낳을 수 있다."

이런 멋진 말을 남긴 사람은 니체였던가? 자기 안의 모순을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새로움으로 향하는 창조의 첫 걸음일 테니까.

손관승·언론사 CEO출신 저술가(ceonoma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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