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단독] "돼지핏물 사태는 人災"…비용 아끼려다 대처 늦어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경기 연천군에서 발생한 돼지 핏물 사태는 지방자치단체와 행정당국의 안일한 방역 시스템이 부른 인재로 드러났다. 매몰 방식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사후 관리가 필요 없는 열처리 소각 방식(렌더링)을 고집해 사체 처리가 늦어진 와중에 핏물이 침출된 것이다. 지자체는 매몰 때 쓰이는 탱크를 충분히 비축하지 않았고, 정부는 매몰 처리에 쓰이는 탱크 용기의 표준규격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행정당국의 총체적 '방역 불감증'이 도마에 올랐다.

현장 사정에 밝은 도축장 관계자는 15일 "렌더링 방식만으로는 살처분 작업에 수개월이 걸리니 매몰 처리를 병행해야 한다고 방역당국에 수차례 의견을 전달했는데도 '원래 계획대로 가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며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에 하나뿐인 렌더링 처리 기계가 고장 나자 포천에 있는 소각장으로 옮기려다 그마저도 포천 주민들 반대에 부닥치니 뒤늦게 매몰 처리를 진행하려다 발생한 촌극"이라고 전했다.

렌더링은 사체를 고온에서 가열한 뒤 퇴비 등으로 재가공하는 방식이다. 사후 관리가 필요하지 않고 비용이 적게 들어 지자체에서 선호하지만 처리 시설이 부족해 많은 양을 한꺼번에 처리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정부는 2017년부터 매몰용 탱크를 재난관리자원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자체가 적정량을 비축하고 보유 현황을 신속히 파악해 살처분 매몰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연천군은 가축 전염병이 매년 발생하지 않는 데다 매몰탱크를 보관할 대형 창고가 없고, 장기간 보관하면 품질이 저하된다는 등 이유로 매몰탱크를 충분히 비축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더 큰 문제는 아직까지 매몰용 탱크의 표준규격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지자체별로 재질과 두께, 강도 등이 서로 다른 탱크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섬유강화플라스틱(FRP) 탱크 매몰 방식을 도입한 2014년부터 작년까지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로 가축 수천만 마리를 살처분하면서도 탱크 표준규격을 만들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표준규격과 별다른 인증 절차가 없다 보니 현재 매몰용으로 설치되고 있는 탱크 대부분은 건축에 오랫동안 사용돼온 정화조"라며 "하수도법상 개인하수처리시설에 해당하는 정화조는 엄밀히 따지면 매몰탱크와는 시공 방법이 달라 땅속에 매설할 때 토압을 견디지 못해 시공 후 균열 등 하자가 발생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생활하수를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화조는 두께가 더 얇아 파손 우려가 큰데도 구조 변경만 약간 해서 매몰탱크로 쓰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매몰용 탱크 표준규격과 인증 절차를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평상시 지자체들의 방역 태세를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도 손을 놓고 있다. 재난관리자원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지자체별로 권고만 할 뿐 나머지는 재량에 맡겨 정확한 재고 보유량은 확인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양연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