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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특권의 트릭…新엘리트들의 `오인된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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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3년 전 일이다. 서울대에 등장한 독특한 '과잠'이 캠퍼스 정문을 넘어 사회적 갑론을박을 일으켰다. 학명(學名)과 휘장, 소속 학과를 표기한 점퍼를 일컫는 과잠과 달리 형태가 변형된 과잠이 보도되며 논쟁이 불거졌다. 서울대 휘장을 왼쪽 어깨에, 출신고 휘장을 오른쪽 어깨에 새긴 과잠은 '서열화 꼬리표' 논쟁을 촉발했다.

명문대 브랜드로도 모자라 명문고 출신임을 과시하며 강의실의 다른 동기와 경계선을 그으려는 듯한 과잠은 진화된 과시욕의 현현이란 비판이 쇄도했다. '대학+고교' 과잠이 21세기 변질된 KS마크(경기고·서울대 출신을 함의한 은어)의 체화로 받아들여지자 찬성론자들은 "박탈감이자 열등감의 표현"이라고 응수했다.

컬럼비아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가 쓴 '특권'이란 책은 미국 사회의 새로운 엘리트 집단의 정의와 변화를 파고든 논픽션 수작이다. "나의 운(運)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특권이 아니라 내가 희생해 성취한 능력"이라고 항변하는 신(新)엘리트들에게 저자는 '너희의 능력은 과연 공정했느냐'를 질문하며 능력주의를 깨부순다.

이야기는 세계 최고의 부유층 자제만 입학하는 미국 세인트폴 고교(St. Paul's School)에서 시작된다. 세인트폴 출신인 저자는 졸업 9년 만에 선생님이자 연구자 자격으로 모교로 돌아간다. 백인 명문가 자제가 여전히 다수이리란 편견과 달리 세인트폴의 인종, 계급, 성별 다양성은 조화를 이뤘고 표면적으로는 아름다웠다.

압도적 자본소득으로 부를 물려주던 구시대가 저물고 적지 않은 임금소득으로 자녀를 세인트폴에 보낸 부모가 증가했을 뿐이지, 후배들은 여전히 최고 엘리트 집단의 성을 쌓고 있었음을 저자는 발견한다. 학생들은 특권의식에 전 집단이 아니었다. 셔츠의 브랜드가 아니라 셔츠 안에 누가 있는지가 중요함을 알고 있었다.

새 엘리트들은 '열외자'와 자신을 구분하지 않고 경계를 무너뜨릴 줄 아는 편안함까지 학습 중이었다. 칭찬이 아니다. 위계의 사다리에서 자신보다 '아래'에 위치한 사람과도 상호작용하는 데 능했다. 부모가 사다리를 걷어찼다면 본인들은 사다리 아래를 오르내리며 자유로웠다. 삶을 제약하는 천장도, 굴러떨어질 지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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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에 설립된 성직자 존 하버드(1607~1638)의 동상.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미국 명문고 세인트폴 고교 졸업생들은 내년에 자신들이 갈 확률이 가장 높은 학교가 하버드대임을 알고 있다. 명문학교의 인종과 성별은 다양해졌지만 신(新)엘리트들은 성취를 `본인의 능력`으로 오인하기에 이르렀다고 책은 지적한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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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망이 없어진 자리, 세인트폴 재학생들은 자신이 이룩한 성과를 노력의 산물로 오인하기에 이르렀다. 세상에 위계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사다리 위에서 성취한 모든 걸 자기 능력의 마땅한 결과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온종일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교직원이 처한 난관은 '구조적 불평등'이 아니라 '개인적 불운'이었다.

위계의 사다리를 보존하되, 위계를 눈에서 보이지 않게 만들어버렸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불평등의 새로운 양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세인트폴에 가장 잘 적응하는 예비 엘리트들은 경외감에 올려다보지도 건방지게 내려다보지도 않는, 딱 중간쯤에 위치한 아이들었다. 새 엘리트들은 '잡식성'으로 진화했다.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인생을 구성하는 데 한계가 없는 것. 사회계층 전반에서 나오는 것들을 고르고, 선택하고, 결합하고, 소비하는 그들의 '능력'은 과연 공평했을까. 삶에는 무수한 선택지가 존재함을 모두들 알지만 이를 실현해낼 줄 안다는 건 다른 문제다. 엘리트는 이제 태어나지 않고, 비싼 경험으로 만들어진다.

세인트폴 교과과정은 상상을 불허했다. 그곳에선 인문학 코스를 통째로 가르친다. 사회나 역사 등 분과학문이 아니라 '현대 아일랜드문학'이나 '이브의 딸들: 종교 속 여성의 경험들' 강좌를 개설하는 식이다. 미적분에서 멈추기도 하고 원한다면 면 선형대수를 배운다. 엘리트들의 인생은 처음부터 정교하게 구축된다.

책을 덮으면, '기회의 불평등'을 사과하고 물러난 전직 법무부 장관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기가 불가능하다. 정파 논쟁이 아니다. 책의 알파와 오메가를 이루는 세인트폴 고교에 자녀를 입학시킨 야당의 두 유력 정치인 이름도 한국인에게 익숙하다. 능력주의는 공정한 시스템이었을까. 책에 인용된 한마디에 입맛이 쓰다면 더 '노오력'하길.

"오늘 불평등을 없애 보라. 그러면 내일 다시 나타날 것이다."(미국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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