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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허연의 책과 지성] 윌리엄 포크너 (1897~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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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국영화 '버닝'에는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주인공 종수가 나온다.

영화에서 종수는 "어느 작가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윌리엄 포크너'라고 답한다.

영화 '버닝'에는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장면이 나온다. 포크너의 소설에도 '헛간 타오르다'라는 작품이 있다. 두 작품은 줄거리는 완전히 다르지만 뭔가 태우는 장면이 모티프로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비닐하우스든 헛간이든 이것을 왜 태우는지에 대한 이유는 영화와 소설에서 잘 설명되지 않는다. 아니 일부러 설명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두 작품 모두 부조리한 인간 내면을 그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모든 행동에 1대1 대응과 같은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잠재된 어떤 욕망이나 상처, 혹은 병증 같은 것들이 어떤 상황에 튀어나오는 것일 뿐 그 과정을 분석하는 건 불가능하다. 인간은 오묘하고 복잡하니까. 포크너는 "누가 미친 것이고 누가 정상인지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포크너의 소설은 부조리하다. 그의 소설은 읽히려고 쓰여진 소설이 아닌 것처럼 불친절하다. 포크너는 독자들의 반응에도 무심했다.

"당신의 소설은 너무 어려워서 세 번이나 읽었는데도 잘 모르겠다"고 항의하는 독자에게 포크너는 "그러면 네 번 읽어보라"고 말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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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는 인간의 이면에 그림자처럼 숨어 있는 불안과 악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다. 포크너는 관계가 어그러지거나, 욕망이 실현되지 않을 때 꿈틀대면서 튀어나오는 악을 그렸다.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포크너의 대표작은 '소리와 분노(The Sound and the Fury)'다. 1920년대 미국 남부의 콤슨가를 소재로 몰락해가는 가족사를 다룬다. 하버드대를 다니다가 자살한 장남 퀜틴, 현실적인 둘째 제이슨, 여동생 캐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백치 막내아들 벤지. 이렇게 4남매의 이야기다.

소설은 대부분 주인공 한 명 한 명의 독백으로 진행된다. 가장 핵심이 막내인 벤지의 독백이다. 벤지는 세 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벤지의 독백은 그냥 소리에 가깝다. 그 소리에는 논리가 없다. 본능적인 내뱉음이다. 그렇다 보니 소설은 점점 어려워진다.

줄거리는 이렇다. 벤지를 돌보던 누나 캐디는 문란하게 살다가 이혼을 한다. 토지를 팔아 하버드대에 입학했던 장남 퀜틴은 캐디에 대해서 근친상간의 감정을 가지고 살다가 괴로움에 자살한다. 제이슨은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살다가 평생 모은 돈을 조카에게 도둑맞는다. 이런 식으로 4남매는 모두 서서히 침몰한다.

소설에는 아버지가 장남에게 시계를 주는 장면이 나온다.

"너에게 시계를 주는 것은 시간을 기억하라고 함이 아니다. 잠시라도 시간을 잊으라는 것이다. 시간을 정복하는 데 인생 전부를 들이지 마라.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은 없다."

아버지의 말처럼 시간을 이길 자는 없었다. 그날 이후 콤슨가의 시간은 몰락을 향해 간다.

빛에 대해 쓴 소설이 있고, 빛과 그늘에 대해 쓴 소설이 있다. 포크너는 '그늘'에 대해서만 소설을 썼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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