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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성장쇼크에 양파대란까지…성난 印민심 `모디노믹스`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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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모디노믹스'로 불리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사진)의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인도 선거 승리를 좌우하는 힘을 가진 양파 가격까지 급등해 모리 총리의 발등에 불이 붙었다. 올해 2분기 인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5.0%로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8일 인도중앙은행이 발표한 9월 소비자신뢰지수도 89.4로 6년 만에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 둔화 추세도 뚜렷해 인도의 4~9월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3%나 감소했다.

지난달 CNN은 인도에서 올해 416개 기업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내면서 은행들이 총 248억달러(약 29조원)를 상각 처리해야 했다고 보도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7일(현지시간) 인도의 경제성장률이 "과거보다 상당히 낮아질 것"이라며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꿨다. 인도 경제가 안 좋은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양파 가격마저 브레이크 없이 폭등해 모디 총리의 근심을 더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 보도했다. 인도 양파 40㎏당 도매가격은 현재 1908루피(약 3만1024원)로 올해 초에 비해 5배가 뛰었다고 FT는 전했다. 지난 4월에는 도매가격이 2400루피(약 3만9024원)까지 폭등해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양파 가격이 폭등한 이유는 몬순(우기) 장기화로 강수량이 급증했고, 몬순 종료 이후에는 기온이 평년보다 오르면서 양파 농사가 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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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가격 폭등은 모디 총리와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의 리더십에 치명적인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FT는 경고했다. 인도에서 양파는 선거 당락을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관심사다. 1980년 총선, 1998년 델리 주의회 선거에서 BJP가 패배한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양파 가격 폭등에 정부가 대응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지난 5월 총선을 앞두고 치러진 주의회 선거에서 BJP가 농촌 지역에서 패배하자 로이터통신은 "양파 가격에 모디 총리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전했다. 인도 농촌에는 전체 인구 13억5000만명 중 70%가량이 몰려 있다. 특히 인도 최대 양파 산지인 마하라슈트라주·우타르프라데시주 두 지역에만 하원 545석 중 4분의 1가량인 128석이 분포해 있다. 성난 농촌 지역 민심에 당황한 모디 총리는 '2022년까지 농가 수익 2배 증가' 등 친농업 공약을 내세워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인도 국민이 양파 가격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양파가 인도의 주된 식재료이자 반찬이기 때문이다. 인도 카레, 볶음밥 등 주식에 양파는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한국인이 김치를 반찬으로 먹듯 인도인은 양파를 반찬으로 소비하기 때문에 인도인에게 양파 가격은 한국인의 김장철 배추 가격과 같은 체감경기 지표 역할을 한다. 특히 인도에는 빈곤층 수백만 명이 소득의 절반 이상을 식품 구입비로 사용하기 때문에 양파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FT는 전했다.

양파 가격 폭등으로 농민들 불만이 치솟자 모디 정부는 국내 양파 가격 안정화를 위해 지난 9월 연간 220만t에 달하던 양파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세계 양파 산출량의 20%를 생산하며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양파 생산국인 인도지만 당장 국내 불만을 잠재울 필요가 있어 수출 금지를 결정한 것이다. 또 모디 정부는 농부 1억4500만명에게 1년에 1인당 6000루피(약 9만8700원)를 지원하고, 주방 가스시설과 화장실을 설치해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라구람 라잔 전 인도중앙은행 총재가 당장의 미봉책으로는 인도 경제를 다시 성장세로 이끌어 올려 민심을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도의 분기별 GDP 성장률은 지난해 2분기 8.0% 이후 3분기 7.0%, 4분기 6.6% 등 계속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실업률도 2017~2018 회계연도(매년 4월 시작) 기준 6.1%로 4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5월 재집권에 성공한 모디 총리는 금리 인하 등 각종 경기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 8월 모디 정부는 외국인과 자국 투자자에 대한 증세안 철회 등이 포함된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니르말라 시타라만 인도 재무부 장관은 27개에 달하는 국영은행의 숫자를 인수·합병(M&A)을 통해 12개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인도중앙은행이 연방정부에 1조7600억루피(약 30조원) 규모의 연방정부 배당금을 수혈하는 방안도 승인했다.

모디노믹스가 위기에 빠진 이유로 경제 전문가들은 모디 총리가 실시한 화폐 개혁을 꼽고 있다. 화폐 개혁이 전체 화폐 유통 물량의 86%에 영향을 미치며 화폐를 주로 쓰는 소상공인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모디 총리의 정치적 위치가 견고해 의지만 있다면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나 모디 총리가 경제 정책에 나서는 것보다 힌두 민족주의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총선에서 BJP는 연방하원 543석 중 303석을 획득하며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모디 정부는 잠무카슈미르의 자치권 철폐부터 북동부 지역의 소수자 박해 등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김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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