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순서가 잘못됐다. 내가 필요한 물건이 생겼을 때 대체 물품을 찾는 게 맞다. 내 휴대폰은 좀 오래되었지만 특별히 망가진 곳이 없으며 답답할 만큼 속도가 느려지거나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는 새 물건을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이 소비를 격려한다. 쿠폰이 생겼을 때 사라고, 예쁘니까 사라고 나의 소비를 부추긴다. 심지어 대리점에서는 반값만 내면 손에 쥘 수 있다고 설명한다. 들어보니 2년 뒤, 쓰던 휴대폰을 반납하는 조건이 붙어 있다. 결국 반값으로 휴대폰을 쓸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은 2년 뒤 신제품을 또 사야 한다는 의무의 다른 말이다. 미니멀리즘이 대세라는데 결국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생긴 새 제품을 새로 사는 방식으로 그 흐름에 합류하는 모순이 계속된다.
반값에 100만원짜리 신제품을 당장 손에 쥘 수 있다면 50만원을 번 셈일까 아니면 50만원을 쓴 셈일까. 판매자는 돈을 버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리고 고백하건대 순간 흔들렸지만 필요하지 않았다면 결코 바람직한 소비가 아니다. 내 통장이 가벼워지는 것도 문제지만 불필요한 소비는 지구 반대편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콜탄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콜탄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게 되었다. 결국 IT 산업의 필수광물인 콜탄을 얻기 위해 무분별한 채굴이 이어지고 갱도가 무너져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수십명씩 사상자를 낸 큰 사고야 뉴스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지지만 더 작은 사고가 얼마나 일어나고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도구도 주어지지 않은 채 더 어린 이들까지 광산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한다. 사람만 다치는 것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개발이란 이름으로 숲이 사라지고 그곳에 살던 고릴라도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니 새롭게 나오는 스마트폰들은 그저 내 지갑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TV에는 끊임없이 새 휴대폰 광고가 나온다. 골목마다 들어선 휴대폰 매장에는 각종 프로모션을 써붙여 놓았다. 날씨를 확인하려고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는데 어느새 새 휴대폰을 사라는 배너가 밑에서 깜박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콩고민주공화국의 롤런드고릴라보다 당장 무슨 색의 신제품이 더 예쁜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솔직해지자. 나는 이미 제품이 주는 행복이 얼마나 짧은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새로운 휴대폰을 구입하는 순간 그에 맞는 케이스를 시작으로 또 플라스틱 제품들을 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비를 계속하다보면 어느새 다음 모델의 광고를 만날지도 모른다. 결국 지구에 피해를 덜 끼치며 살겠다는 마음으로 조용히 구매 취소 버튼을 눌렀다. 잠시나마 널 손에 쥘 날을 생각하며 행복했으니 그거면 됐다고 위로하면서 말이다. 부디 다음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기를.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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