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송강 등 가사문학 꽃피운 곳 / 새벽 정자의 고요한 풍경 고즈넉
가사라는 전통적 시가는 연구자 김학성 선생에 따르면 4음 4보격 연속체의 전통 정형시다. 고려말 나옹 선사의 ‘서왕가’가 첫 모습이었다 하는데 조선 들어와 송순, 정철의 작품들로 찬연한 모습을 드러내고 후기로 오며 규방가사, 동학가사 등으로 민중 깊이 뿌리를 내렸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
처음 가사문학관을 찾아간 것은 몇 년 전이다. 문학관 내부를 돌아보는데 무언가 깊은 감흥을 느낄 수 있었다. 일 따라다니면 자연이 보이지 않는 법인데, 한글로 쓴 작품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이번에는 이 가사에 대한 짧은 생각을 발표하기 위함이었지만 담양 부근에 들어서자마자 아름다운 늦가을 산야 풍경이 두 눈에 훅 하고 ‘끼쳐’ 들어온다.
지난번에 와서 보지 못한 이곳 명승을 조금이라도 확인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침부터 떠나 오후 두 시가 넘어 이제야 당도, 곧 일이다. 아쉬운 마음 잠시 접고 내일 아침을 기약한다.
일이 끝나고 이야기를 나눈 사람끼리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가사문학관 바로 옆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이 집 주인은 김치 명인이라고 한다. 식당 주인과 ‘절친’인 최한선 선생이 처음에는 사삼주, 곧 더덕주를, 다음으로 하수오주를, 그것도 모자라 막판에 꾸지뽕주를 ‘강제징발’한다. 그중에는 10년 넘게 담아 놓은 술도 있으니 식당 주인은 꽤나 큰 손실이 났겠다.
이 동네 분들은 한 말씀을 해도 유머러스하다. 부드러운 어조를 술잔 너머로 느끼며 나는 이곳 식영정을 무대로 송강이 썼다는 ‘성산별곡’의 노래 구절을 생각했다. 정 송강은 정치 역정은 굴곡 심하기 이를 데 없고 정적도 많았지만 그의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에, 이곳 담양 창평 성산을 무대로 네 계절의 사연을 담은 성산별곡은 구절구절 실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 사람의 삶도, 자연적인 삶과 사회적인 삶이 있어 어느 면은 잘해도 다른 면은 못하게 마련이니, 나 역시 둘 다 잘하기를 바라지 말아야 하리라.
자리는 쉬이 파했다. 대구에서 건너와 토론을 해준 박현수 시인의 단잠을 뒤로하고, 아침 일찍 소쇄원 보자하고 길을 떠났다. 하지만 그 절승이라는 소쇄원 탐방은 눈물 머금고 다시 뒤로 미루어야 했다. 요즘 명승지 관리는 이렇게도 엄격한지, 문 열 시간 안 되었다고 절대 못 들어간다 한다. 겨우 입구 앞까지 길 옆 대나무 숲만 보고 아쉽게 돌아선다.
대신 환벽당, 식영정은 지키는 사람이 없다. 새벽 아침의 고요한 정자들, 그 정자에 서서 바라보이는 고요한 풍경 모두가 바로 온전히 내 차지다. 환벽당에 올라 이 ‘환벽’, 벽으로 둘러쳤음이란 앞에 보이는 산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식영정에 들어가니 정 송강 시대에 김성원이라는 이가 장인 임억령을 위해 지었다는 사연이 눈에 들고, ‘쉬는 그림자’라는 정자 이름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일찍이 이 석천 임억령과 함께 서하당 김성원, 송강 정철, 제봉 고경명을 가리켜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했다 하니 이는 필시 신라 효소왕 때 삼일포에 와 놀던 영랑, 남랑, 술랑, 안상의 ‘사선’에 빗댄 말일 것이다.
정자 앞에 서니 부용당과 그 앞 고요한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장자’에 나온다는 이 ‘쉬는 그림자’의 유래를 생각한다. 나도 이 ‘식영 세계’에 머물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다른 일을 위해 서울 올라가기 전에 오늘은 무주로 가야 한다. 언젠가 다시 이 식영 세계에 들어 소쇄원을 만끽해 보리라.
방민호 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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