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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책과 미래] 일을 사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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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의 직업을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열정의 배신'(부키 펴냄)에서 칼 뉴포트 조지타운대 교수가 묻는다. 흥미로운 질문이다. 대부분 죽지 못해 일한다. 사표를 항상 품에 넣은 채 출근하는데, 먹고사는 일을 좋아할 수 있다니. 답은 단 한 줄로 요약된다. "자기 일에 충분히 능숙해질 만큼 오래 일하면 된다."

때때로 아이들하고 직업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누구처럼 다 자란 아이들 스펙을 챙길 만큼 정신없진 않지만, 걱정되어 슬쩍 물으면 펄펄 화를 날린다. 제 앞가림하겠다는 기개에 마음을 놓는다. "아빠, 나 뭐 하면 좋을까" 하고 심각히 물어온다면 재앙이니까. 아이들 나이 때 나 자신이 편집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했을 뿐, 열정을 바칠 일 같은 것은 떠올린 적도 없다. 군에서 제대할 무렵, 우연한 충동에 출판사에 들어섰다. '읽기중독자'로서 잘할 법한 일인 데다, 첫 직장에서 책을 기획할 수 있는 자율을 보장한 덕분에 재미를 얻어 하루 이틀 날을 덧붙이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천직이라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부터 사랑할 만한 일은 드물다. 스스로 일을 만드는 경우가 아니라면, 설령 그런 일이 있더라도 차례가 아니기 십상이다. 삶이란 우발적으로 다르게 흘러가는 일이 많고, 세상 일자리는 대부분 '자기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인간은 제 욕망을 우선하므로, 남의 일에 운명적 열정을 쏟거나 빼곡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일종의 변태나 다름없다.

뉴포트에 따르면, 일에 대한 사랑은 주로 후행적(後行的)이다. 어떤 일을 운명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오랫동안 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무슨 일이든 꾸준히 잘해낸 사람만이 그 일을 운명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세상은 후자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기에 나중에는 인과가 역전된다. 번쩍이는 자연현상에 번개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나중에는 번개가 번쩍인다고 말하듯. 그러나 번쩍이지 않는 번개는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 해보지 않은 일을 사랑하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이들한테 '열정을 좇으라'는 것은 나쁜 조언에 속한다. 다가올 기나긴 직장 생활은 청년의 순간적 열정을 손쉽게 증발시킨다. 착각에 사로잡혀선 길을 찾기 어렵다. 어떤 일을 사랑할 만큼 오랫동안 하려면 열정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을 남보다 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뉴포트는 조언한다. '어렵고 힘든 훈련을 견딘 후에 탁월함을 얻을 수 있다면 그 길을 따라가라.' 나는 운이 있었다. 좋아하는 '읽기'에서 때마침 그 길을 만났으니까. 부디 아이들한테도 행운이 찾아들기를 바랄 뿐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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