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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광주 고려인마을 가보니… '짐치'에 김치의 원형 남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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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젓갈 안 넣어 깊은 맛은 적어

조선일보

광주광역시 고려인마을 신조야·최아리나·김율리아나·박실라·박스볘타·하두르밀라씨가 ‘짐치’를 담그고 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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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김치연구소 박채린 박사는 “우리 김치의 원형이 고려인의 ‘짐치’에 남아 있다”고 했다. “명칭부터 그렇잖아요. 한국에서도 19세기 말, 시골에서는 20세기 초까지도 김치라 하지 않고 짐치라고 불렀어요. 한반도에서 김치가 계속해서 변화해가는 동안 고려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19세기 말 연해주로 건너갈 당시 조선 김치를 그대로 유지해온 것이죠. 일종의 문화 정체(停滯)죠.”

김장철을 맞아 광주광역시 월곡동 ‘고려인마을’로 갔다. 이곳에 공식 등록된 고려인 5000여 명이 산다. 등록되지 않은 고려인과 러시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에서 온 불법 체류자들까지 합치면 1만5000여 명이 고려인마을에 살고 있다. 고려인은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살아온 동포들이다. 19세기 말 더 나은 삶을 찾아 한반도를 떠나 연해주로 갔으나, 스탈린에 의해 1930년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이들의 후손이다. 소련이 해체되고 중앙아시아 각국이 독립하며 배척당하자 한국으로 들어왔다.

고려인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광주 월곡동 일대에 살다가 공동체를 만들었다. 현재 고려인마을 대표인 신조야(63)씨를 중심으로 상담소에 이어 고려인지원센터가 생겼다가 2013년 광주광역시가 지자체 최초로 ‘고려인 주민 지원 조례’를 제정했고 곧이어 사단법인 고려인마을이 만들어졌다.

고려인마을을 찾은 지난 6일은 마을 사람들이 김장을 담그는 날이었다. 고려인지원센터에 모인 신조야 고려인 마을 대표와 최아리나·김율리아나·박실라·박스볘타·하두르밀라씨 등 여성 여섯이 배추와 양배추로 짐치 김장을 담그고 있었다. 짐치와 함께 ‘비녜그레트’도 만들고 있었다. 비녜그레트는 고려인들이 “빨간 무”라고 부르는 비트와 양배추, 감자 등을 식초에 절여 식용유에 버무린 피클(식초 절임)의 일종. 신 대표는 “중앙아시아에 사는 여러 민족이 공통으로 즐겨 먹는 음식으로 고려인들도 좋아한다”고 했다.

고려인마을에서 담그는 짐치에는 소금에 절인 배추와 양배추에 고춧가루와 마늘, 액젓과 쪽파 등이 들어갔다. 짐치와 김치가 결합한 일종의 변종 내지는 퓨전 스타일이다. 신 대표는 “어머니가 담그던 짐치는 소금과 고춧가루, 마늘이 전부였다”며 “가끔 명태를 절여서 섞어 넣기는 했지만 젓갈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소를 배추 표면에 잔뜩 바르지 않고, 또 배춧잎 사이마다 가득 채우지 않고 2~3장 간격으로 성글게, 그것도 적은 양을 채워 넣는 점도 한국의 김치와 달랐다. 박채린 박사는 “중앙아시아에서는 젓갈을 구하기 어려워 넣지 않는데, 조선시대에도 양념이 귀해서 많이 넣지 못했다”며 “다른 이유에서긴 하지만 덕분에 조선시대 김치가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왔던 이유”라고 했다. 이렇게 만든 짐치는 요즘 한국에서 흔히 먹는 김치와는 겉모습부터 완전히 달랐다. 오랫동안 보관해도 덜 쉬도록 양념을 최소화하는 묵은지와 젓갈 사용을 최소화해 시원한 맛을 살리는 이북식 김치처럼 보였다.

미리 만들어놓은 짐치를 맛봤다. 한국 김치보다 짜고 신맛은 강하면서 단맛과 깊은 맛은 적었다. 중앙아시아와 중남미 등 해외 이주 한민족 식문화를 연구해온 한국음식인문학연구원 김홍렬 원장은 “고려인들은 김치는 김치대로, 짐치는 짐치대로 맛있다고 말한다”며 “어느 것이 더 낫다기보다 서로 다른 음식으로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광주광역시=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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