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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뉴트로 감성’ 도시재생 “돈으로 입힌 패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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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의 한 골목 |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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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 동쪽 광장과 맞붙은 소제동은 대전의 마지막 달동네다. 산과 언덕은 없지만 길이 좁고 구불구불한데다 낡은 집이 모여 있어 달동네라는 별명이 붙었다. 처음부터 달동네는 아니었다. 1920년대 철도원을 위한 관사촌이 들어서면서 소제동은 오랜 기간 부자가 많이 사는 ‘부촌’으로 불렸다.

대전에 신도시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다른 지역 원도심처럼 소제동에는 떠나지 못한 사람들만 남았다. 낡고 조용한 동네였던 소제동은 2009년 재개발 사업 바람이 불면서 완전히 슬럼화됐다. 대전시는 2009년에 소제동 일대를 역세권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했는데 재개발 소문은 그 전에 돌았다. 개발 시세차익을 노린 외지인이 집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였고, 손바뀜을 거친 뒤 소제동 내 주택은 절반 가까이 빈집이 됐다. 집에 개·보수 비용을 들이기 싫은 주인들이 세입자를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재개발 사업은 10년 동안 지연됐다. 그 사이 소제동은 폐가가 넘치는 유령마을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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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이 몰려있는 대전 소제동 골목길. 길 한가운데 고양이가 앉아 있다. / 반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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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30곳 매입 카페·레스토랑 열어

2017년 죽은 마을 소제동을 되살리는 ‘재생’ 사업이 시작됐다. 사업의 주체는 종로 익선동 프로젝트로 이름을 알린 서울의 도시재생 전문업체 ‘익선다다’다. 이들은 소제동 일대 건물 30채를 매입했고, 이 가운데 10곳에 카페와 레스토랑을 열었다. 내년까지 20개 이상 매장을 열 계획이다. ‘핫플레이스’를 만들어 상권 활성화를 통해 소제동을 살린다는 구상이다. 익선다다의 초기 투자금은 도시재생의 마중물이 되고 자본은 재생의 주인공 역할을 한다. 전국 각지에는 익선다다를 비롯한 도시재생스타트업을 주축으로 뜨는 동네 만들기에 한창이다. 자본이 죽인 도시를 자본이 되살리겠다고 나선 셈이다. 과연 이들은 ‘전국의 소제동’을 되살릴 수 있을까.

기존 도시개발 사업과 달리 물리적 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주민의 역량 강화를 통해 도시를 종합적으로 재생하는 정책사업. 국토교통부가 내린 ‘도시재생’의 정의다. 더 간결한 표현도 있다. 지역공동체가 주도해 지속적으로 혁신하는 도시(도시재생종합정보체계). 정부는 도시재생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지역주민’을 꼽는다.

동시에 지역주민은 도시재생 사업을 더디게 만드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도시재생사업의 전 과정은 주민 의견 수렴을 통해 이뤄진다. 이를 위해선 주민협의체를 구성해야 하지만, 협의체 구성부터 쉽지 않다. 도시재생 사업지 대부분은 이미 지역공동체가 파괴된 지역이다. 남은 주민들 역시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른데다 도시재생을 ‘재개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 취지를 설명하는 과정부터 애를 먹는다.

반면 민간자본의 도시재생에서는 지역주민의 역할이 완전히 배제된다. 주민협의를 비롯한 일체의 과정을 건너뛸 수 있다. 자본이 원하는 건물이나 빈집을 골라 웃돈을 주고 매입을 하면 끝이다. 그동안 부동산 거래가 끊겨 떠나지 못했던 원주민은 시세보다 단돈 100만원이라도 더 쳐준다고 하면 선뜻 거래에 응한다. 수십 채의 부동산이 단기간에 팔리고 나면 일대 시세는 급등하기 시작한다. 정태일 대전도시재생지원 센터장은 “외부업체에서 소제동 일대 부동산을 집단 매집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평당 300만원대에서 1000만원까지 올랐다”며 “부동산에 관심이 없던 지역주민들까지 이 기회에 한몫 잡아 빨리 떠난다고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을 확보한 뒤에는 마케팅의 영역이다. 빈집과 폐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이른바 ‘뉴트로’ 감성을 입히고 인스타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힙 플레이스’라는 입소문을 낸다. 낡은 골목 사이에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단장한 카페와 식당 대여섯 개만 있으면 뜨는 동네가 된다. 언론과 유튜브 등 각종 미디어는 새롭게 등장한 ‘핫플’을 반복해서 다룬다.

관광객 유치에 목마른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알아서 ‘가볼 만한 곳’으로 홍보해주기 때문에 유명세를 탄다. 유동인구가 늘고 뒤이어 다른 비슷한 점포들이 들어선다. 주민들은 떠나고 손바뀜이 반복된다. 초반 매집한 세력은 되팔고 나가면 그만이다. 이원제 상명대 디자인대학 교수는 “도시재생이라고 하지만 주거지역을 상업공간으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지역주민의 삶의 양식과 생태계를 배려하지 않은 개발 행위”라고 말했다.

만들어진 핫플에는 ‘약발’이 다할 때까지 투자자들이 몰린다. 부동산과 임대료는 계속 상승하고 일단 오른 시세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60년째 소제동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이종완(82)씨는 “이 동네 빈집을 만든 것도 서울 사람들이고 요즘에 들어와서 땅값 올린 사람들도 외지인들”이라며 “지금 장사하는 사람들은 잠깐 돈 벌고 챙겨서 나갈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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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에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반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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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 아닌 주거지 상업화’ 비판도

거주지를 상업공간으로 만드는 방식은 결국 서울 종로 익선동 일대와 경리단길 등 뜨는 동네마다 나타났던 ‘젠트리피케이션(주거 세입자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과거 익선다다가 개발한 익선동 한옥마을 역시 현재 젠트리피케이션 진행 4단계(초기·주의·경계·위험) 가운데 ‘경계’ 상태에 처해 있다(국토연구원).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장은 “대부분의 도시재생스타트업에게 도시재생은 패션에 불과하다”며 “그저 개발이익을 추구하는 부동산 업체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익선다다 측은 “거점을 만들고 유동인구를 늘려서 상권을 살리는 것도 도시재생의 한 방법”이라며 “최소 10년은 소제동에서 도시재생사업을 할 예정이기 때문에 부동산 시세차익을 노린다는 비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임차인이 계약 연장을 요구할 수 있는 기간을 10년으로 늘리도록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됐기 때문에 임차인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익선다다의 도시재생 방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해당 방식이 단기간 눈에 띄는 변화를 불러온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최근 도시재생 뉴딜의 가시적인 성과를 강조하고 있는 정부가 ‘익선다다 모델’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현재 익선다다는 서울 중구와 전남 순천, 강원 춘천에서 도시재생 컨설팅 등 용역사업을 진행 중이다. 전국 도시재생 뉴딜 선정 지역에는 익선다다와 유사한 형태의 도시재생스타트업이 속속 진출하고 있다.

익선다다가 진출한 대전시 역시 과거 성매매업소 밀집 지역으로 낙후된 대전역 인근 정동마을 개선 사업(정동미 프로젝트)에 익선다다의 투입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정동마을은 2017년부터 지역 시민단체 주도로 도시재생사업(마을미술프로젝트)이 진행된 지역이다. 3년째 정동마을 도시재생을 진행하고 있는 황혜진 대전공공미술연구원 대표는 “성매매업주들에게 멱살을 잡혀가며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데 3년이 걸렸다”라며 “범죄 발생률이 줄고 사람이 오갈 수 있는 마을로 만든 것도 큰 성과”라고 말했다. 임경수 지역재생활동연대 준비위원장은 “상업지역으로 변모되는 순간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기존에 어렵게 구성한 지역공동체는 완전히 소멸된다”고 지적했다.

정부·지자체의 성과 조급증은 도시재생 사업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도시재생은 긴 호흡이 필요한 작업이다. 예산을 줬으니 성과를 내라고 재촉하는 것은 재생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공의 역할과 민간의 역할이 적정 배분된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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