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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경제문제에 밀린 통일… 미래지향적 국민 의식 키워야 [신통일한국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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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서울은 지금 / ② 통일의식 / ‘통일보다 경제문제가 우선’ 70%로 압도적 / ‘평화공존 선호’ 2018년보다 4.6%P 늘어 21% / ‘통일 필요하다’ 응답도 2018년比 5.1%P 줄어 / 희생보다 ‘더 나은 삶’ 지지 경향 뚜렷해져 / 의무감 퇴색… ‘우리의 소원 통일’도 옛말 / 평화의 관점 등 미래지향적 통일교육 시급 / “북한을 다른 하나의 외국이라 생각 / 과거 주입식 통일담론 제 역할 못해 / 직접 참여해 느낄 수 있는 교육 필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1947년 처음 발표된 ‘우리의 소원’이란 노래는 이제 옛말이 됐다. 처음 이 곡의 가사는 ‘통일’이 아닌 ‘독립’이었고, 정부 수립 이후 ‘통일’로 바뀐 가사가 교과서에 실렸다. 하지만 72년이 지난 지금 이 가사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싱크탱크에서 실시하는 통일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통일을 당위적 차원에서 지지한다는 응답이 매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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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 ‘통일’보다는 ‘평화공존’ 선호

국책연구기관 주도로 진행되는 국민 통일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통일’보다 ‘평화공존’을 원한다는 응답이 점차 늘고 있다. ‘통일’과 ‘경제 문제’ 가운데 더 시급한 현안을 묻는 말에는 경제적 어려움 해결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이 많았다. 그동안 당위적 목표로 여겨졌던 통일이 점차 국민에게 설득력을 잃어가면서 새로운 통일정책과 논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15일 통일연구원(KINU)의 ‘KINU 통일의식조사 2019’ 결과에 따르면 ‘통일보다 평화공존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지난해 16.2%에서 올해 20.8%로 4.6%포인트 증가했다. ‘남북한이 한민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하나의 국가를 이룰 필요가 없다’는 응답도 지난해 36.8%에서 올해 41.4%로 4.6%포인트 늘었다. 이 조사는 올해 5월 한국리서치가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3명을 대면면접 방식으로 실시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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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탈민족주의적 통일관’은 특히 20대 젊은 세대에서 49.7%로 가장 두드려졌다. 이어 40대 44.7%, 30대와 50대 40.9%, 60대 이상은 34%로 조사됐다. 통일연구원은 지난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기대감이 높아졌다가 올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분위기가 경색되면서 응답률이 변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 조사에서 ‘통일 문제와 경제 문제 중 하나를 선택해 해결해야 한다면 경제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은 70.5%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조사 때 60.7%보다 9.8%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작년보다 5.1%포인트 감소한 65.6%에 그쳤다.

이 밖에도 응답자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72.4%)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성공단 재가동(10점 만점에 6.2점)이나 금강산관광 재개(6.4점)에 대해서는 긍정적 의견(6점 이상)을 냈고,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은 주둔해야 한다’는 의견(40%)이 주둔 반대(22%)보다 높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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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의 방식을 영위하는 통일 원해

통일에 대한 세대별 인식은 달랐지만 결국 개인적인 희생이 수반되는 통일보다는 더 나은 삶으로 갈 수 있는 방식의 통일을 지지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박주화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30대 통일의식에 대한 변명’(2018년) 보고서를 통해 “현재 40대 이상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한 세대로 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감을 학습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20~30대는 이러한 사회적 의무감에서 벗어났을 뿐”이라며 “이들은 개인적 희생이 요구되는 통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솔직하게 밝히지만, 기성세대는 개인적 희생 없는 통일 즉 실현 불가능한 통일을 원하는 위선적 통일의식을 나타냈다”고 지적했다.

무조건적인 통일보다는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식의 통일이 지지를 얻고 있다.

박상병 인하대 교수는 “더 나은, 더 발전된 삶의 방식을 영위할 수 있는 통일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고 성급히 통일해서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라며 “한국 경제가 더 활성화되고 통일을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여력을 갖추는 게 더 먼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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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이끌 미래지향적 통일교육 이뤄져야

통일에 대한 세대 간 인식의 차이는 그들이 받아온 교육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18 통일의식’(한국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60세 응답자는 학교 통일교육으로 주로 반공·안보교육(83.4%)을 받았지만, 20대와 30대는 반공·안보 교육은 각각 34.2%와 52.3%에 그쳤고 북한에 대한 이해(13%, 〃), 탈북자와 다문화(18%, 10.4%), 자유민주주의 가치(18%, 15.8%), 남북한 민족의식 함양(10.4%, 6.3%), 통일의 이익(6.3%, 2.3%) 등으로 다양한 통일교육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60대 이상은 반공·안보교육 외 통일교육을 받은 경험은 6% 미만이었고, 민족의식 함양과 통일의 이익 분야의 피교육 경험은 1% 미만으로 집계됐다.

송영훈 강원대 교수는 “학교 통일교육이나 사회 통일교육의 내용을 다양화하기 위해 정책적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 그 내용이 안보와 북한의 이해, 탈북자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며 “북한을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평화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남북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통일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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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신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분단 길어진 탓 젊은 세대엔 통일이 변화”

“젊은 세대에게는 주입식 통일담론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며 느낄 수 있는 통일교육을 해야 합니다.”

통일연구원의 국민 통일의식조사를 주관하고 있는 이상신 통일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은 15일 전화 인터뷰에서 최근 젊은 층의 통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이 위원은 “젊은 층은 북한을 다른 하나의 외국이라고 생각한다”며 “노년층의 경우 북한을 적대적이고 불안한 상대라고 생각하면서도 민족 공존에 대한 의식이 혼재돼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평가했다.

그는 “세대별 차이가 나타나게 된 이유는 분단이 너무 길어졌기 때문”이라며 “젊은 세대에게 분단은 처음부터 주어진 정상적인 상황이고 오히려 통일이 변화에 해당한다. 반면 장노년층은 분단 상황이 비정상이고 통일이 정상상태로 회귀한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세대를 떠나 모든 연령층에서 통일은 비용이 발생하고 실제 삶에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인식은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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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신 통일정책연구실 연구위원


이 위원은 이 같은 세대별 통일인식 차이가 굳어진 데는 우리 사회에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1989년)이라는 이름은 민족이 하나로 통일돼야 한다는 당위성에 기반을 두지만 이것이 더 이상 젊은 세대에게는 유효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통일담론에는 크게 3가지 요소가 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민족주의, 두 번째는 경제적 이유, 세 번째는 평화담론이나 인권 측면이다.

이 위원은 “그동안은 1번과 2번의 이유만 부각됐지만 오히려 젊은 층들은 탈물질적 경향이 강하고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며 “통일을 정치적 자유나 남한 민주주의의 완성, 인권이나 자유의 가치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게 이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주한미군에 대한 응답을 봐도 통일 이후에도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응답이 비교적 높게 나타난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주한미군이 북한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역할 외에도 이제는 동북아 힘의 균형유지를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한다고 인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응답이 높으면서도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동시에 높게 나타나는 모순적 상황에 대해 “분단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긴장을 완화시키고 어떻게든 대화와 타협을 통하는 길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통일 담론 형성 방법에 대해 “과거 반공교육은 땅굴견학이나 안보현장을 보고 답이 정해진 독후감을 쓰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북한의 실상에 대해 더 많이 접하고 탈북민을 만나는 등 스스로 경험하고 답을 찾아가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식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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