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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모던어묵·원조녹두·미쉐린 중식당… 식탐 ‘뿜뿜’ [안젤라의 푸드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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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재료 수제어묵·일품 요리 ‘버킷리스트’ / ‘할머니의 손맛’ 노릇노릇한 전에 막걸리 술술 / 중식집 진진, 요리는 고퀄리티·가격은 합리적

우리 속담은 해학적이고, 풍자적이며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어른들 말씀 틀린 것 하나없다고 하는데, 부모님의 꾸지람이나 속담을 보면 ‘그렇지’ 라는 생각을 하며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사소한 것도 거듭되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크게 됨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를 외식에 적용하며 더 무시무시한 일이 생긴다. 메뉴 단가가 저렴하다고 이것저것 시키다보면 5만∼6만원을 훌쩍 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내가 살게” 라고 했던 사람이 표정관리 하기가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만큼 맛도 있고, 기분이 좋기에 후회는 없다. 안젤라의 푸드트립 서른일곱 번째 목적지는 ‘가랑비에 옷 젖는 미식가의 맛집’이다.

세계일보

# 3000원부터 시작하는 수제 어묵

오픈하기 직전부터 미식가들이 버킷 리스트에 담은 신사동 모던 오뎅. 가로수길에서 숙성 사시미와 창작 요리로 많은 식객의 사랑을 받은 재패니즈 다이닝 네기의 세 번째 작품이다. 네기는 기본 단가가 높고 와인, 사케, 고급 소주 등을 먹어야 할 것 같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분위기다. 하지만 모던 오뎅은 도쿄 JR선 역전의 식당같이 작고 소박한 ‘ㄷ자형’ 식당이다. 오후 6시에 오픈하는데 손님들은 5시 20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다. 어묵집인데 줄까지 서서 기다릴 게 있나 싶지만 메뉴 구성과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아삭한 파가 들어간 파 어묵, 양파의 은은한 단맛이 있는 양파 어묵, 우엉의 진한 향이 감도는 우엉 어묵, 표고버섯에 새우살을 갈아넣어 튀긴 새우 표고 어묵. 모두 3000∼5000원 사이다.

들어간 재료가 서로 다르니 다 맛은 봐야 할 것 같고, 10개를 주문해도 3만∼4만원이니 부담이 없다. 하지만 창작 요리를 기반으로 맛집의 대열에 오른 네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녹진한 아보카도에 새콤달콤한 초된장 소스를 곁들인 아보카도 스미소, 닭다리살을 닭육수에 저온 조리해 깨소스를 더한 냉채 방방지, 부드럽게 만든 일본식 계란말이를 소 힘줄 소스와 함께 먹는 요리 등 일품 요리를 비롯해 화요와 산토리 생맥주로 만든 9000원 모던 쏘맥, 하이볼, 사케를 함께 먹다보면 7만원선까지 훌쩍 올라가게 된다. ‘어묵만 먹고 가겠어’라고 다짐했던 사람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세계일보

# 막걸리가 술술 들어가는 1만원대 파전집

을지로 원조녹두는 을지로의 역사와 함께했을 정도로 오래돼 남녀노소 불문하고 두꺼운 단골층이 있는 곳이다. 원조녹두라는 큰 간판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들어간다. 오후 5시인데도 이미 막걸리를 마시고 얼굴이 빨개진 사람들이 앉아 있다. 이곳을 한문장으로 표현하면 ‘10가지 이상의 전을 직접 부쳐주는 할머니의 손맛’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벙거지를 쓴 작은 체구의 할머니께서 직접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전을 부치고 있다. 요즘 물가 상승으로 가격이 올랐지만 1만∼1만1000원이다.

해물파전, 해물녹두, 굴전, 동태전, 굴파전, 굴녹두 등 신선할 수밖에 없는 재료들을 직접 만든 반죽에 넣어 정성스럽게 부친다. 양도 어찌나 많은지 셋이서 두개만 시켜도 충분하다. 문제는 전은 불변의 진리인 막걸리다. 하루 종일 전을 기름에 부치는 곳이라 소주보다는 시원한 탄산이 느껴지는 막걸리를 찾게 된다. 하지만 장담컨데 파전 하나에 막걸리 두 병 또는 막걸리 한 병에 소주 한 병은 기본이다. 파전의 양도 많지만, 막걸리를 먹기 위해 태어난 맛처럼 막걸리가 술술 들어간다. 알코올을 보충하기 위해 소주를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정답은 막걸리다. 밥 대신 막걸리를 먹는다는 핑계로 실컷 막걸리를 들이켜는 을지로 직장인 여성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세계일보

# 3만원이면 평생 20% 할인가로 즐기는 중식

서교동 진진 역시 오픈 직전부터 미식가들이 버킷 리스트에 넣었다. 진진은 중식의 대가 왕육성 사부가 그의 제자인 황진선 셰프와 함께 공동 운영하는 중식집이다. 왕 대표는 식재료와 조리법은 40년간 호텔 중식당에서 체득한 방식을 유지하돼 가격은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제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진진을 오픈했다. 새우살을 다져 식빵 사이에 끼운 뒤 튀겨낸 멘보샤, 속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대게살볶음, 여성들이 좋아하는 아삭한 소고기 양상추쌈, 해물 짬뽕 등이 있다. 오픈 후 1년 만에 미쉐린 가이드의 1스타를 받는 영예를 얻었고, 현재는 총 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회원가 기준 오향 냉채 1만4800원, 멘보샤 6개에 1만4000원, 물만두 5600원, XO볶음밥 6600원 등으로 상당히 가격이 저렴하다. 중국 현지 식재료를 사용해서 향신료와 기본 간이 강한 편이라 맥주보다 중국 고량주나 바이주와 잘 어울린다. 진진이 성공적인 식당이 될 수 있었던 비법은 ‘회원제’이다. 진진에서 식사를 하고 3만원을 내면 모든 매장에서 평생 20% 할인(주류 제외)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메뉴판을 보면 정상가와 회원가로 나뉘어 있다. 회원이 “나랑 가면 20% 할인받을 수 있다”며 조금 으스대며 모임을 주도하다보니 신규 고객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foodie.ange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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