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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단독]교육부가 주는 의료 지원금, '법적책임' 운운하며 신청 안한 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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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전국 시·도교육청에 가래흡인(석션)이 필요한 특수학교 학생들을 위한 특별교부금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서울시교육청이 신청하지 않아 서울지역 특수학교가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주간경향>이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 등에 대한 취재를 종합한 결과 교육부가 지난 5월 특별교부금 지원 공고를 각 시·도교육청에 낸 결과 5개 교육청에서 신청, 지원금을 받게 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도교육청은 특수학교 3개교에 의료지원 시범시행 의사를 밝혀 2020년도 특별교부금 예산으로 1억5000만원가량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서울시교육청은 그러나 특수학교 학부모들이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항의할 때까지 교육부의 신청공문이 왔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향신문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6월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 교육청에서 두 번째 임기 1주년을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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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교육청은 신청 지원금 받아

특수학교 내 의료지원 미비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문제다. 시발점은 2017년 서울의 한 특수학교 재학생 ㄱ군(당시 13세)의 부모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면서부터다. 뇌병변 1급 장애인인 ㄱ군은 2013년 지체장애 특수학교에 입학했다. 스스로 가래를 삼키지 못하는 ㄱ군에 대한 가래흡인 조치는 담임교사가 해왔다.

그러던 2014년 11월 ㄱ군의 기도에 삽입한 튜브가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학교장은 담임교사의 가래흡인 조치를 중단시켰다. ㄱ군의 부모는 결국 생업을 중단하고 매일 2, 3차례 교실로 찾아가 가래를 빼내줘야만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특수학교 학부모협의회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인권위 진정이 제기됐다. 인권위는 “중증장애학생에 대한 의료조치 편의 지원은 교육상 필요한 정당한 편의제공”이라며 학교장에 시정권고를 내렸다. 또 교육부에 중증장애학생을 지원할 의료조치 마련을 권고했다. 이번 교육부의 의료지원 특별교부금 지원은 사실상 2017년 7월 인권위 권고에 따른 후속조치인 셈이다.

서울시교육청은 그러나 뇌병변 1급장애 학생의 부모가 항의를 할 때까지 교육부로부터 이 같은 의료지원을 위한 특수교부금 신청공고가 내려온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교육청 담당 장학사는 지난 10월 31일 학부모와의 전화통화에서 “의료적 지원 부분은 따로 교육부를 통해 안내받은 바가 없다. 공문도 전혀 내려오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이후 학부모가 교육부 담당자를 통해 공문이 지난 5월에 내려간 사실을 확인하자 담당 장학사는 “공문은 5월에 내려왔고, 나는 9월 1일자로 발령받아 해당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만 통상 특교금 신청 공문이 오기 전 교육부가 시·도교육청 담당자에게 해당 공문의 성격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 같은 설명자리가 없어 담당자가 공문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웠고, 서울시교육청 입장에서는 (의료적 지원) 사업 타당성에 대해 교육부가 명확한 지침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특교금 신청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은 학부모가 해당 교육부 및 서울시교육청 담당자와의 전화통화 녹음 내용을 <주간경향>이 입수해 확인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 11월 12일 전화통화에서 해당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단순히 특교금을 신청해 받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8년도에 교육부에서 전국특수학교 교장을 모시고 회의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학교장들도 ‘교육부에서 법령정비나 제도 등에 대한 지침정리가 선행되지 않는 한 의료지원이 어렵다’는 의견을 줬었다”면서 “교육부가 명확한 지침을 내려주지 않은 상황에서 특교금 신청을 하기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중증중복지체장애학생에게 특수학교 내 의료지원은 생명권과 더불어 학습권 보장을 위한 필수적 지원에 해당한다. 게다가 의료적 지원이 필요한 장애학생은 전국을 통틀어 극소수에 불과하다. 예산문제 등을 이유로 거부할 수준의 인원은 아니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의료지원이 필요한 학생은 2019년 7월 기준 전국에 558명이다. 대부분 특수학교에 재학하고 있다. 가래흡인, 경관 영양이 필요한 지체장애학생은 이중 67.7%인 378명에 불과하다.

교육계가 그럼에도 의료지원을 주저하는 이유는 서울시교육청 담당자의 발언처럼 만약에 벌어질 ‘사고’의 책임소재를 명시한 법이 없다는 데에 있다. 특수교사가 석션을 하던 중 학생의 기도가 막혀 질식하는 등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특수교사가 과실치사상죄로 처벌될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에도 많은 학부모가 직접 특수학교를 방문해 자녀의 석션과 섭식을 돕는 일이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

사고 위험 내세워 의료지원 주저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장애학생에게 의료적 지원을 실시하는 사람은 학부모가 28.3%(197명)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보건교사 23.7%(165명), 활동보조인 16.4%(114명), 간호사 0.9%(6명) 순이다(기타 30.7%). 결국 아이를 특수학교에 보낸 부모 10명 중 3명이 직장이나 생업을 포기하고 하루 약 2, 3차례 교실을 방문해 자녀의 가래흡인 및 영양경관을 지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활동보조인도 결국 각 가정에 지원되는 바우처로 고용된 인력이다. 이 숫자까지 합치면 특수학교 재학생 부모 절반 가까운 숫자가 특수학교에서 맡아 해야 할 의료지원을 개인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뇌병변 1급 장애인 자녀를 특수학교에 보내고 있는 김정순씨(47·가명)는 “만약 석션이 의료행위라면 우리 엄마들은 전부 의료법 위반 아니냐. 우리도 의료면허 없이 십수 년간 우리 아이들 석션과 경관영양을 하고 있다”며 “왜 일반 학교도 아니고 아픈 아이들만 모여 있는 특수학교에서 이 일을 의료행위라며 전부 미루고 몇 년째 아이들과 부모들을 괴롭히는 것이냐”고 말했다.

교육부는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의 얘기와는 달리 이미 특수학교 내 의료지원과 관련된 법은 마련돼 있다는 입장이다. 의료법 제33조 1항을 비롯해 학교보건법 제15조의2, 학교보건법 시행령 제23조, 학교보건법 시행규칙 제11조,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 제7조 2항 내지 4항 및 제9조,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조 각호 등에 이미 특수학교 내에서 간호사 자격증이 있는 보건교사에 의한 의료지원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의료지원을 위한 법은 이미 충분히 마련돼 있다. 서울시교육청이나 특수학교가 그럼에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의료지원 중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누가 지느냐며 미루기 때문”이라며 “이미 교육부 장관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했음에도 이들은 사고 시 책임을 정한 법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학교 내 의료지원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서울시교육청이 언급한 일부 특수학교 사망사고에 대해서도 “중증중복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장애에 수반되는 병으로 인해 매년 사망자가 나온다”면서 “교육부도 사망자 집계를 하고 있지만 의료지원 도중 사망한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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