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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30th SRE][letter]신용평가를 더욱 뛰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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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E 30년을 위한 제언

윤영환 크레딧 애널리스트

이데일리

△윤영환 크레딧 애널리스트


[윤영환 크레딧 애널리스트] SRE 30회, 15년은 우리 신용평가를 시장과 연결해온 역사다.

SRE에 맞춰 매년 3월말과 9월말에 평가사들이 스페셜리포트와 세미나를 쏟아내는 것은 관례가 되었다. 스페셜리포트가 글자 그대로 특별해졌다. 시장에 신용이슈에 대한 입장을 전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를 쓴다.

SRE는 시장의 크레딧 판단과 의지를 모으는 채널이기도 하다. 평가사 서비스 평가, 워스트레이팅, 이슈 설문에 답하고 논쟁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어느덧 크레딧 투자자의 집단지성이 형성되었다.

SRE의 집단지성은 건설PF에서 시작하여 조선, 해운 등의 각종 신용이슈를 선제적으로 다루면서 시장의 위기관리에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 이번 30회 SRE는 해외대체투자라는 시장의 뜨거운 감자가 테이블에 올랐다. 자체신용도 평가 등 신용평가 제도 변경 논의에도 SRE는 시장의 의지를 전하는 채널이었다.

SRE가 이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내적 요인은 설문 참여자 풀의 전문성이었다. SRE는 줄곧 ‘전문가에 의한, 전문가를 위한, 전문가의 설문’을 고수했다. 다다익선이나 기계적 배분으로 참여자 풀을 구성하는 경우에 비해 현저히 노이즈는 작았고 차별성은 컸다.

환경적으로는 마침 신용평가 서비스 개선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아 참여와 반향이 컸다. 채권시가평가 도입 이후 회사채 시장과 신용평가는 채권시장의 당면 과제였고, 신용평가 시스템 자체도 큰 변화를 겪는 상황이었다.

우리 신용평가는 1998년부터, 글로벌 신용평가는 2001년 엔론 위기를 계기로 격변에 휘말렸다. 글로벌 신용평가의 체제 정비는 ‘경쟁 심화’, ‘신용평가 프로세스의 합리화(평가모형 또는 독자신용등급 등 평가절차의 투명화가 포함)’, ‘감독 강화’ 등 3개 축으로 진행되어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감독 강화를 앞세우고 평가 프로세스 변화를 가미하면서, 경쟁 심화는 유보했다.

2010년대 글로벌 신용평가의 변신 또한 인상적이다. 우리는 아직 평가 프로세스와 경쟁 심화를 논하고 있을 때, 글로벌 신용평가는 위기 이후의 새로운 균형(New normal) 모색에 돌입했다. 비금융 부문은 보완이었지만, 금융 부문은 변혁이었다.

비금융 부문의 평가기준은 정성적 요소가 늘고, 유동성 요소와 재무정책 요소가 강화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가장 전통적인 평가지표였던 레버리지 요소가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부채비율을 특히 중시하는 우리로서는 상당히 생경하다.

최근 수년간 미국 기업의 부채비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으나 실질적인 재무 안정성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그저 현금과 투자자산 등 금융성 자산 증가, 글로벌 분업 및 금융기법의 발달로 레버리지 지표가 평가지표로서의 유용성을 잃어가고 있을 뿐이다.

금융 부문은 평가기준이 전면 재설계되었다. 금융과잉(Too much finance) 시대의 종료라는 패러다임 전환에 따른 큰 변화다. 그림 ‘민간신용/GDP’에서 2009년을 전후한 미국·선진국 금융의 패러다임 전환과 그에 대비되는 중국의 엄청난 신용과잉, 그리고 우리나라의 미묘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선진국의 금융 질서는 대마불사(大馬不死·Too big to fail) 기조의 Bail-out(구제금융)에서 대마필사(大馬必死·Too big to save)의 Bail-in(채권자손실부담)으로 전환되고 있다. 양적완화로 금융질서의 붕괴를 막았지만 더 이상의 카드는 없다는 절박감이 그 배경이다.

우리 신용평가가 1998년 위기 이후 겪었던 것처럼 주요 글로벌 금융회사의 신용등급이 큰 폭으로 재조정되었다. 평가기준이 대폭 강화되면서 최고 등급이 깎이고 등급 분포는 확대되었다. 대표적인 투자은행은 신용등급이 AA-에서 BBB+까지 밀리고 사업의 틀을 바꿨다. 25배를 넘던 레버리지는 10배 아래로 줄였고, 영업의 중심은 자기자본투자에서 고객자산관리로 이동했다.

기업신용시장은 오히려 풍부해졌다. 거대 투자은행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금융공학은 위축되었지만 포트폴리오 투자의 확대로 하이일드 시장이 활성화되었다. 재테크의 화려함보다는 기업자금 공급이라는 금융의 본질에 더 충실해진 것이다.

최근 중국의 신용과잉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기업신용 과잉이 엄청나다. 국영기업과 국영은행의 막대한 부실이 이슈가 되고 있다. 경제 체질 변화의 필요성에 미국과의 무역 갈등이 기폭제가 되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의 민간신용 증가는 상당부분 가계신용 확대에 기인하며 부동산 시장정책 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보다 민감한 이슈는 다른 쪽에 있다. 2009년 이후 선진금융시장에서는 퇴조한 금융공학 상품이 우리나라에서는 대형IB의 기치 아래 오히려 세를 키워왔다. 그 역주행이 고비를 맞은 듯 메자닌과 ELS 또는 해외 대체투자 등에서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다. 회사채 시장의 극단적 양극화와 회사채 시장의 증권사 쏠림은 덤이다.

금융공학 상품은 구성의 오류가 작용한다. 개별적으로는 문제가 없어도 규모가 너무 커지면 큰 부담이 된다. ABCP와 ELS 잔액은 수년 전 100조원을 넘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금융공학 상품시장의 안정은 IB의 신용도와 직결되고, 규모가 커지면 사실상 운명공동체가 된다.

우리나라 금융의 가장 큰 특징은 당국의 강력한 보호다. 글로벌 신용평가에서 우리 은행들에 적용하는 정부 지원가능성(Government support) uplift는 무려 4노치에 달한다. OECD 최고 수준이며, 심지어 중국과 같거나 능가한다.

우리 금융은 혁신, 소통, 관행보다는 모방, 정책의지, 제도로 움직여왔다. 그러다 보니 환경이 변해서 질서가 틀어져도 시장의 힘으로 잘 풀어가지 못한다. 우리 은행들의 채권 가격을 보면 후순위는 달라도 선순위는 전혀 차이가 없다. 증권사 신용등급은 은행 후순위 수준에 맞춰진다. 모두 펀더멘털보다 ‘우산’이 무조건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괜찮은가? 신용등급은 자금흐름의 신호등이다. 자금흐름이 펀더멘털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면 시장은 왜곡되고 쏠림이 커지면서 곧잘 위기로 이어진다. 우리 당국의 위기관리 역량은 대단하지만 1998년처럼 뜻밖의 상황이 되면 내성을 갖추지 못한 시장은 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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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이후 글로벌 IB의 디레버리징 기조와 반대로 우리 IB들은 당국의 우산 아래에서 몸집을 키우고 레버리지를 높였다. 하지만 이렇게 키운 몸집은 글로벌 금융 경쟁력이 되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 금융회사들이 반면교사다. 부대끼면서 혁신과 위기관리 역량을 키워야 한다. 위기야말로 금융회사를 강하게 키우는 최고의 교사다. 다만 수업료가 비싸고 위험할 수 있다.

저렴하고 안전한 위기 시뮬레이션 시스템이 있다. 바로 신용등급이다. 그저 충분히 움직이게만 하면 된다. 물론 우리 신용등급은 변동성과 차별성이 낮고, 대형 금융회사의 경우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하다. 우산에 대해 의존하는 타성이 성과와 리스크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우산은 법규가 아니라 경험과 해석이 모아진 공감이다. 당연히 상대적이고 유연하다. 당국도 시장 조성 및 마지막 보루 역할에 충실하고 일상적 개입은 피한다. 개입과 의존, 체질 약화 그리고 다시 개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누구도 원치 않는다. 신용등급의 변동성은 새로운 시각을 이끌어 타성을 넘어서는 기회가 된다.

무리 없이 신용등급의 변동성을 높이는 효과적인 방법은 평가사간 신용등급 차별화(Split)를 촉진하는 것이다. 글로벌 양대 평가사의 신용등급은 절반 정도가 서로 다르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차별화가 시장에 대한 소구점(selling point)이다. 반면 우리 평가 3사의 등급 차별화는 10% 내외에 불과하다. 동조화가 일반적이고 간혹 신용등급이 갈리면 일부 투자자들은 불편해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평가사로서는 동조화가 편하고 스트레스와 비용이 작다. 평가사간 신용등급 차별화를 촉진하려면 그에 상당하는 계기나 유인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평가 서비스의 질적 성장을 이끌어온 SRE라면 할 수 있다. SRE는 반기 단위의 정성적 평가지만 차별화 평가는 월 또는 분기 단위의 정량적 평가가 가능하다. 결은 다르지만 지향이 같은 만큼 상호 보완 및 시너지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차별화 평가는 다양한 형태로 확장된다. 차별화를 시계열 추적하면 ‘신용등급 선도율(Hit & Miss) 평가’로 이어진다. 가중치를 통한 변조도 가능하다. 이것이 쌓이면 ‘신용평가사 신용등급 가치의 차별화’라는 흥미로운 결과도 가능하다. 더욱 발전하면 ‘신용평가지수’를 통한 연관 상품 개발도 기대할 수 있다.

평가사간 신용등급 차별화가 워낙 낮은 상태에서 이제까지의 SRE는 불가피하게 투자자에게 보다 잘 설명해주는 평가사를 꼽는 것으로 대리 만족했다. 차별화 평가가 더해지면 달라진다. 진짜를 평가하게 된다.

[이 기고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30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 책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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