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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대법원장보다 경력 더 필요한 지방법원장 추천 기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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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원장 발표안에 22년 명시

15년이면 충분한 법 규정과 상충

"문턱 높여 개혁취지 퇴색" 지적

서울경제


대법원이 서울동부와 대전지방법원에서 내년 2월 부임할 새 법원장 후보를 추천받는 가운데 김명수 대법원장이 내건 ‘법조 경력 22년·법관 재직경력 10년 이상’이라는 추천 기준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행법에서 엄연히 법관 경력과 무관하게 법원장은 법조 경력 15년, 대법원장·대법관도 20년이면 임용 자격을 주도록 규정하는데 대법원장이 법 위에 명시적인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제한이 늘어날수록 ‘법원 민주화’를 꾀한다는 개혁 취지 자체 역시 퇴색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법원 안팎에서는 지난 11일 김 대법원장이 발표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 시범 실시 확대안’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올 2월 제도를 처음 실시할 땐 없었던 새로운 제약 사항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은 2020년 정기 인사를 기준으로 ‘법조경력 22년 이상(사법연수원 27기 이상)’, ‘법관 재직경력 10년 이상’을 ‘모두 충족하는 사람’만 후보로 추천하라고 못 박았다. 후보 수도 ‘반드시’ 3인 이상을 복수 추천하라고 주문했다.

이는 지난 인사 때 발생한 의정부지법 사태를 의식한 기준이었다. 당시 김 대법원장은 의정부지법 판사들이 단수 추천한 신진화 부장판사(29기)를 ‘재직기간 부족’을 이유로 보임하지 않고 장준현(22기) 현 법원장을 직권으로 임명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로 인해 스스로 약속했던 사법개혁 원칙을 꺾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논란은 김 대법원장이 제시한 기준이 현행 법과 상충된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법원조직법 44조는 판사·검사·변호사 경력이 15년 이상인 사람이면 누구나 지방법원장 후보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법관 재직 경력은 요건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법과 다른 가이드라인을 공식적으로 명시하는 바람에 15~22년 경력의 법조인들이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는 분석이다. 법원의 한 고위급 판사는 “법에 ‘경력 15년 이상’이라는 기준이 있으니 자칫 문제가 될 소지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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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권자가 내부적·암묵적으로나 고려할 만한 22년이라는 기준점을 굳이 공개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법령상 최고위 법관 후보 자격까지 뛰어 넘는 경력 기준을 보면서 이를 개혁 조치로 받아들일 국민들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것이다. 법원조직법 42조에 따르면 대법원장과 대법관조차 45세를 넘은 법조 경력 20년 이상의 사람이면 누구나 국민 추천을 받아 임명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법 5조에 따르면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역시 40세가 넘은 15년 이상 법조 경력자면 누구라도 추천될 수 있다. 김 대법원장이 제시한 가이드라인대로라면 대법원장·헌재소장·대법관·헌법재판관보다 일선 법원장의 문턱이 더 높은 셈이다. 일각에서는 사법부 계급을 ‘대법원장-대법관-평판사’의 단순 구조로 확립하겠다던 김 대법원장 공약과도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평가도 나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법원장의 역할과 후보 추천 과정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자격 제한은 불가피하고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인사권자가 얼마든 추가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며 “이전 사법부와 비교하면 법원장 후보 대상이 여전히 더 넓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2월부터 강행 중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폐지와 관련해서도 ‘직무대리가 아닌 고법 부장판사가 항소심 재판장을 맡아야 한다’는 법원조직법을 어기고 법 개정 전 일을 너무 서두른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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