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3 (금)

북송 '법적 근거' 오락가락 …혼란 키우는 정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통일부-통일장관 답변 달라 논란 자초

북한이탈주민 수용 헌법 3조도 ‘흔들’

유엔 “탈북자 예외없이 고문” 보고서

중앙일보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15일 오후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흉악범죄 북한 주민 추방과 관련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가 지난 7일 북한 선원 2명을 강제 북송한 ‘법적 근거’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통일부와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법적 근거를 놓고 다른 설명을 한 데 이어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강제 북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사그라지지 않는다. 여기에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북한이탈주민 관련 헌법 3조 적용의 ‘변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며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 현안보고에서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강제 북송이 어떤 법적 근거에 따른 것이냐’고 묻자 “검토한 법률은 많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어떤 법을 적용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통일부는 전날 이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에선 “북한 주민 추방과 관련한 명확한 법적 근거는 없음”이라고 명기했다. 통일부는 강제 송환이 이뤄진 7일 이후 줄곧 “법적 근거가 미비했다”고 인정해왔다. 이를 두고 위법 논란이 지속되자 김 장관이 법률 검토를 했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김 장관이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서 논란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장관의 답변에 이 의원은 “법제처에 이번 추방 관련 (정부가) 법률 해석을 의뢰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반박했다.

중앙일보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 장관은 북한이탈주민의 법적 지위 관련해서도 헌법 3조의 무조건적인 적용이 쉽지 않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 의원이 “북한 어민 송환 결정은 북한 주민을 국민으로 인정한 헌법 3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하자, 김 장관이 “(탈북자는) 잠재적 국민이 맞지만 실제로 적용할 때는 남북관계의 이중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최소한의 절차인 귀순 의사에 대해 진정성을 (판별하는) 절차를 거쳐 수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가 13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 주민에 대해 “헌법 3조만 이야기한다면 많은 애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이같은 접근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그간 북한이탈주민을 수용해온 법적 근간이 헌법 3조로, 김 장관 발언은 대법원, 헌법재판소 판례와 배치된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가 헌법 3조에 담겨 있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은 한국 국민이라는 헌법적 측면 ▶강제고문할 소지가 큰 나라로 보내지 않는 인도적 측면에서 모두 미비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판사 출신인 조용원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우리 헌법의 적용 대상으로, 헌법의 보호범위에 있다”고 적었다. 또 다른 국제법 학자는 “주관적 귀순의사가 있고 주권적 범위 내로 들어오면 범죄 여부와 관계없이 그 사실 자체에 의해 한국 사람이 된다고 본다”고 했다. 정부가 북송 근거로 주장하는 귀순 의사의 진정성에 대해서도 송인호 한동대 교수는 “현행 법률상 귀순 의사는 동기나 시기 면에서 아무런 제한이 없다”며 “귀순 의사를 (정부가) 임의로 부정한 조치는 위법적 행위”라고 페이스북에 밝혔다.

중앙일보

중국 랴오닝성 안산에서 체포된 탈북민 7명 중 9살 최모양의 부모가 5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이 탈북민의 강제북송 중지를 위해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권 침해 요소가 크다는 비판은 국제난민법‧국제인권법 등 주로 국제법에 근거해 나온다. 한 국제 법학자는 “국제법 고문방지협약 3조를 보면 고문 우려가 있는 나라는 송환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짚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는 지난 2014년 “중국에서 강제송환된 경험이 있는 100명 넘는 탈북자 모두가 한 명도 예외 없이 심문 과정에서 구타를 당했거나 악랄한 방식으로 고문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COI 보고서는 강제 북송된 탈북자들에게 자행되는 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를 상세히 기록했다. ▶정기적 고문 및 자의적 구금 ▶성폭행 ▶강제실종 ▶즉결처형 ▶그 밖의 중한 인권 침해를 겪게 된다면서다. 특히 한국에 가려다 붙잡힌 탈북자들을 북한은 가장 심하게 다룬다고 보고서는 기술했다. 한 여성 탈북자는 “보위부에 구금돼 있던 중에 맨발의 한 할머니가 ‘노역을 해야 하니 신발을 달라’고 하자 보위부원들이 ‘너희는 동물이고 곧 죽어야 하니 신발을 얻을 자격이 없다’며 피를 흘리도록 구타했다”고 말했다. 한 남성 탈북자는 “5개월 동안 남성 13명이 죽는 것을 봤다. 시신을 다른 수감자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방치하며 ‘이것이 너희가 조국을 버렸을 때 겪게 될 일’이라고 공포심을 조장했다”고 말했다. 또 “성인들은 하루 10시간씩 일하며 한 끼에 옥수수죽 다섯 숟갈씩만 배분받았다”고 돌아봤다. COI 보고서는 “(각국은) 국제 인권 감시 기구가 북한의 인권 상황이 현저하게 개선됐다고 확인할 때까지 북한으로 어떠한 북한 이탈주민도 강제로 송환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북한 선원 2명을 강제 북송한 것은 이같은 유엔 조사위 권고와도 어긋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일보

지난 14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유엔총회 산하 제3위원회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인권담당 제3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북한의 인권침해를 비판하고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는 국내·국제적 위법·인권 침해 논란에 대해 중·장기적 법적·제도적 보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외통위에 제출한 북한 주민 추방 관련 향후 조치 계획으로 흉악 범죄의 기준, 귀순의사의 객관성 확보, 남북 간 형사사법공조(범죄인 인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같은 기준 마련에 앞서 정부가 북한 내 인권 침해에 대한 감수성이 있는지부터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지혜·백민정·김수민 기자 baek.minjeong@joon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