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겉으로 드러나는 한일 양국의 입장은 팽팽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에서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을 만나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의 가장 큰 이유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보복성 수출규제를 들고나온 일본의 태도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우리도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원칙론을 내세워 일본에 '결자해지'를 촉구한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동북아 안보 협력도 중요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극적인 반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외교적 노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반면, 일본 쪽에서는 한국이 지소미아 연장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수출규제 철회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최종 방침을 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7일 요미우리 보도에 따르면 한일 외교 당국 간 협의와 한미 간 회담 결과를 재검토한 일본 정부가 기존 입장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틀 전에 도쿄에서 열린 한일 외교부 국장급 회담, 에스퍼 장관의 문 대통령 예방 자리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시각이 묻어난 맞불 기조로 보인다.
지소미아와 일본의 수출규제는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나 다름없다. 더 근원적으로는 한일과거사 문제에 닿아 있다. 한일 양국은 그동안 과거사 문제가 이슈로 불거질 때마다 외교적 해법으로 풀어왔다. 굴곡의 과거 역사를 경제 문제로까지 비화시키지 않았는데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연계하면서 지소미아 논란이 떠오른 것이다. 1965년 조인된 한일 기본협정을 바라보는 두 나라의 시각 차이는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 부분은 별도의 트랙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한국을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핵심물질 수출규제를 취한 일본이 안보상 신뢰를 기반으로 맺어지는 지소미아 문제에는 정반대의 입장이라면 앞뒤도 맞지 않는다. 경제·외교 분리 원칙에 따라 일본이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조처를 먼저 내놓고 한국이 화답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순서다.
협정 종료의 시점은 점점 다가오고 있지만, 섣불리 결과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두 나라 모두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원치 않으리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런 맥락에서는 지소미아 문제를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힌 갈등 관계를 풀어낼 극적 반전이 이뤄질 수도 있다. 일본은 반도체 생산라인용 액체 불화수소(불산액)의 대한국 수출을 허가했다고 한다. 이미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물질 3개 품목의 수출을 제한적으로나마 허가한 데 이은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두 나라는 서로 자극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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