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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데뷔 30돌’ 이승환·이은미…마이웨이 30년, 내 멋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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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저항 #무한도전 #완벽주의 #소신발언

‘사운드 덕후’ 이승환 & ‘맨발의 디바’ 이은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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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흐른 후/ 나는 한숨을 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숲속으로 두 갈래 길이 나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덜 밟은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이 둘이 살아낸 지난 30년 음악 인생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게 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수풀 우거진 험한 길’을 두려움 없이 선택해 새 길을 닦은, 결코 안주하지 않는 삶.

립싱크 위주의 방송이 아닌 라이브 공연으로 음악 활동의 대부분을 채웠고, 완벽한 사운드와 목소리를 벼려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목소리 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두 명의 가수. 바로 올해 데뷔 30주년, 공연 1000회를 맞은 이승환과 이은미 이야기다. 이들이 한국 문화예술계에 끼친 영향은 단순히 히트곡 수나 차트 순위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음악가로서, 소셜테이너로서 우리 사회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의 30년을 돌아본다.

■ 선구자…30년·1000회 공연

이은미는 1989년 신촌블루스의 객원 보컬로 데뷔해 1990년 발매된 3집 앨범에서 ‘그댄 바람에 안개로 날리고’를 불렀다. 이후 1992년 1집 <기억 속으로>를 발표하면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보컬 괴물’로 소문이 자자했지만 대중에겐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가수였다. 그러나 방송 자체를 피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라이브를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시설을 피했기 때문이다. 마치 연기를 하듯 립싱크를 요구하는 가요 현장의 구조적 문제에도 불만이 컸다. 이 때문에 방송 무대와 예능에 집착하지 않고, 대신 크고 작은 공연장을 가리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같은 해 데뷔한 이승환은 기존 기획사에 기대지 않고 직접 회사를 차려 1집 앨범 <b·c 603="">을 만들었다. 이승환은 지난달 12집 앨범 발표를 앞둔 음악감상회에서 “자기 앨범을 직접 제작하고 매니지먼트까지 한 최초의 가수가 저였다”며 “어린 나이에 제작을 하면서 업계에 대한 불신이 생겼고, 부조리함에 대한 저항, 반항심 같은 게 많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립싱크를 요구하는 방송에 대한 불만, 업계에 대한 불신은 두 가수를 ‘공연의 신’으로 이끌었다. 새 앨범을 발표하지 않아도, 방송에 출연하지 않아도, 두 가수는 끊임없이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을 이어갔다. 30년 동안 이승환은 이미 1000회 공연을 달성했고, 이은미도 곧 1000회 공연을 달성하게 된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방송 출연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이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음악에 집중하는 모습을 강조해 대중에게 강한 신뢰감을 심어줬고, 이런 점이 장수의 동력 중 하나가 됐다”고 평가했다.

두 가수는 앨범을 낼 때마다, 공연을 할 때마다 ‘굳이’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해왔다. 이승환은 2012년 8월 ‘빠데이’ 콘서트에서 게스트 없이 5시간40분간, 총 52곡을 부르며 당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장시간 공연을 시도했다. 매 공연 기록을 경신한 이승환은 지난 6월 열었던 ‘라스트 빠데이―괴물’ 콘서트에서 93곡에 달하는 노래를 9시간30분간 열창하며 국내 최장 공연시간 기록을 세웠다. 가창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한 시도다.

이은미는 2005년부터 디지털 방식으로 녹음하는 관행을 따르지 않고 아날로그 녹음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보컬과 연주자가 같은 녹음 부스 안에 들어가서 원 테이크로 녹음하는 방식이다. 여러 번 노래를 부른 후 잘된 부분을 골라서 잘라 붙이는 식의 믹싱이나, 보정 작업을 거의 거치지 않는다. 매번 앨범을 낼 때마다 이처럼 공을 들이기에 2014년 <스페로 스페레> 미니앨범을 낼 때는 이례적인 발매 방식을 선택하기도 했다. ‘음원 발표 후 음반 발매’라는 공식을 뒤엎고 오프라인 매장에 음반을 먼저 공개하고 음원을 공개한 것이다.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은미의 대표곡 ‘애인 있어요’의 작곡가이자 <위대한 탄생 2>(문화방송·MBC)에서 이승환과 함께 ‘멘토’로 활약한 윤일상은 “두 가수가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은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고, 고인 물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은미에 대해 “겉보기엔 세고 강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녹음 부스에 들어가면 디렉터의 말을 존중하고 따라준다”며 “그동안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곡을 제안해도 흔쾌히 승낙하더라. 구태의연한 방식을 싫어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이승환에 대해서는 “최근 가수 조용필을 함께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도 라이브 공연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더라. 9시간30분 동안 노래 부르는 것만 봐도 공연에 대한 열정, 가창력에 대한 자신감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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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주의자…‘맨발의 디바’ ‘사운드 덕후’

‘맨발의 디바’로 불리는 이은미, ‘사운드 덕후’로 불리는 이승환의 수식어는 이들의 완벽주의에서 비롯됐다. 이은미는 “1집 녹음을 위해 토론토에 갔을 때 주변의 미세한 소리까지 담아내는 예민한 마이크 때문에 신발을 벗고 녹음을 했는데 이것이 최초의 맨발 가창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후 1993년 11일 동안 하루 2회씩 총 22회 공연을 하던 당시, 5일째 되던 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그때 그녀는 ‘정말 중요한 것, 노래만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액세서리부터 화장, 하이힐마저 벗어버린 채 무대에 섰고, 그러자 그 부담을 떨쳐낼 수 있었다고 했다. 김성환 음악저널리스트는 “이는 우연한 사건들 속에서 닥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취했던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항상 본인이 가진 모든 것을 팬들과 관객에게 100%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완벽주의자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일화다”라고 말했다.

이승환은 좋은 사운드를 위해 완벽을 추구한다. 수차례 재녹음을 하고, 고가의 장비에 투자하고, 국내외 최고 연주자·엔지니어와 협업한다. 이승환의 노래를 공동 작곡·편곡해온 황성제 작곡가는 “이승환은 백그라운드 보컬을 녹음할 때도, 도-미-솔의 3성부를 한다고 가정하면, ‘도’를 위해서 진성, 가성, 여린 가성, 강한 가성, 날카로운 진성 등을 수차례 더빙한다”며 “보컬뿐 아니라 국내외 연주자 섭외 역시 최고의 뮤지션들만 고집하고, 믹스 작업에서도 여러 명의 엔지니어에게 믹스를 지시한다. 그들이 만든 사운드 중 가장 좋은 장점만을 추려 하나의 곡으로 완성하다 보니 남들보다 2~3배의 시간과 노력이 더 들어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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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셜테이너…“두려워도 말할 것”

이들은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소신을 밝히는 몇 안 되는 가수 중 하나다. 두 가수는 ‘광우병 사태’, ‘방송3사 파업’,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 등 우리 사회의 굵직한 현안이 폭발하는 현장에서 늘 시민과 함께였다. 최근에는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집회에도 참석했다. 업계에서든, 대중에게서든 ‘적’이 많아질 수 있는데도 이들은 거침이 없다. 두렵진 않았을까.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이은미는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다. 두려워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국민으로서 내 나라가 자랑스러운 나라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라며 “칭찬해주는 분도 있고 욕하는 분도 있지만 난 내 권리와 의무를 다할 뿐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예정이다. 음악인이고, 대중에 노출된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승환은 “내 성향을 드러냄으로써 팬의 절반을 버렸다는 말도 들었다”며 “내가 쓰는 곡들에 내 생각을 녹여내고 있다. 그 음악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분들을 설득하지는 못하겠다”고 말했다.

‘가시밭길’을 걸으면서도 꿋꿋이 30년 동안 어려운 길을 택하며 음악을 계속할 수 있었던 동력은 역시 음악의 힘,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주는 팬들이다. 이은미는 최근 팬이 보내온 손편지를 읽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이은미는 “‘30년 전 부산의 한 공연에서 ‘어떤 그리움’을 부르는 것을 보고 전율을 느끼고 팬이 된 소녀가 언니와 함께 30년간 나이를 먹었다’는 내용의 편지였는데, 음악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 번도 밝힌 적이 없었는데도 다 알고 있더라.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승환의 오랜 팬이라고 밝힌 남완희(36)씨는 “무대 퍼포먼스와 음향에 대한 완벽주의, 록을 향한 꾸준한 열정,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자기관리가 장점”이라며 “그의 음악과 함께 울고 웃으며 위로받았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 앞으로도 그의 팬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두 가수는 평생의 업이자 애정의 대상인 음악의 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음악에 빠지는 원동력은 역시 음악이에요. 이 소리가 내가 원하는 소리고, 이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움직이게 하고 다시 일어나게 해요. 재능의 한계를 느끼며 난 왜 이것밖에 안 되지 하면서도 다시 녹음실에 가 있는 걸 보면 분명한 것 같아요.”(이은미)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거나 사로잡을 수 있는 게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일면식도 신뢰도 없는 사람의 마음마저 움직이게 하는 음악을 쉽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이승환)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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