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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쌀농사법 아니라 논두렁에서 깨우친 ‘의로운 역사’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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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30여년 ‘논 벼 쌀’ 펴낸 김현인씨

서울대 농대 시절 반독재 투쟁 앞장

30대 전남 곡성 정착…15년째 벼농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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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겨레의 혼이다.” <논 벼 쌀>(전라도닷컴 펴냄)의 저자 김현인(66)씨는 “쌀이 있어 우리는 이 땅의 긴 여정이 빛이 되어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고 생각하는 ‘농꾼’(농군의 비표준어)이다.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곡성에서 살고 있는 그는 광주 서중·일고를 거쳐 서울대 농대를 나왔다. 20대를 반독재 투쟁의 거리에서 보낸 그는 30대부터 유기농 과일 농사를 시작했다. 그가 벼와 쌀의 세상을 만난 것은 “세계화의 이름으로 쌀의 조종이 울리던” 2004년 무렵이다.

“벼농사가 이대로 스러져서는 안된다. ‘하나의 옹이’라도 박아야지”라는 다짐으로 버려진 산골 논을 찾아 젖먹이처럼 달라붙었다. 전남 장흥의 다랑이 논 50평에서 시작한 농사를 곡성 옥과로 옮겨 이어갔다. 흙 속에 깃든 생명체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심경으로 밭갈이를 하지 않는 무경운과 씨앗을 직접 논밭에 심는 직파법으로 벼농사를 하기도 했다. “정결한 논에 오리나 우렁이나 잡물을 들일 수 없어 몇천 시간씩 김을 매기도 했다”는 말에 논과 벼, 쌀을 대하는 그의 ‘서늘한 경건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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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겨레의 숨결 국토의 눈물’ 부제에서 짐작하듯, 책은 자연순환농법이나 친환경 농사 소개서가 아니다. “겨우 남은 쌀 한톨을 들어 ‘그 이’들을 찾아나섰던 길”에서 만난 사유의 응고물이다. 그는 “온국토를 구름길처럼 둘러싼 논둑을 따라 정기의 나락이 가득한 나라가 조선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작은 논둑길에서 만난 것은 30억평 이 땅의 논벌에 스며 있는 의로운 ‘역사’와 사람들이었다. 임진왜란 진주성 싸움의 김시민과 삼장사, 호남의병과 김덕령의 죽음을 떠올린다.

논에 고인 물에서 그가 본 것은 “평화와 수평(평등)”이다. 김씨는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채우고 또 채워서 끝내 낮은 곳의 그 그늘진 어깨들을 다 돋아낸다”고 적었다. 수평의 논을 지키는 벼는 부드럽지만 단호하다. 피(잡초)와 달리 위세를 부리는 법도 없이 하늘만 바라보며 커 나갈 뿐이다. 뽑히지 않으려고 항거하는 피와 달리 벼는 ‘뽑혀야 한다면 내 발로 걸어 나가마’라고 반응한다. 뽑혀진 벼를 보던 그의 뇌리엔 1970년 11월 전태일과 1980년 5월의 윤상원의 죽음이 스친다.

쌀은 “우리 역사와 함께 흘러온 부동의 동반자”다. <동의보감>엔 ‘사람의 정(精)과 기(氣)는 모두 쌀에서 나온다. 그래서 그 글자(한자)에도 ‘쌀 미’(米)가 들어있다’고 적혀 있다. 그는 쌀 시장 개방의 불가피성을 교묘하게 퍼뜨리고 수용한 정부와 농민단체도 통박한다. “(2015년 11월 14일)백남기가 맞아 죽었다고 분개는 했을지라도 왜 한낱 쌀에 생애를 걸던 그가 물대포 앞에 섰는지를 새긴이는 없었다. 이 땅의 쌀은 한낱 먹을거리, 푼돈거리가 되어 민족사에 지워지고 민족사도 아득해진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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