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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정동칼럼]남자들만의 세상,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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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희한합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 한두건도 아니고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의 일들만이라도 기록을 위해 이 지면에 새기니 독자들은 꼭 끝까지 읽고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경향신문

사례 1. 폭행과 협박을 통한 지속적인 강간은 물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성의 성을 도구화한 자에게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강간 치상 및 특수강간 혐의에 면소 및 공소기각을 선고하면서, “시골, 고졸 출신으로 ‘장벽’을 넘고자 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는 말을 얹는 판사.

사례 2. 성매매, 성매매 알선, 변호사비 업무상횡령, 증거인멸교사,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식품위생법 위반 등), 해외 원정 도박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수많은 범죄 혐의가 있는 자에게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구속 영장을 기각한 판사.

사례 3. “단호하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여성이 성관계에 동의한 줄 알았다”며 강간을 저지른 자에게, 식당에서 상대방 접시에 고기를 넣어준 행동이 “성관계를 은연중에 동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성의 몇몇 행동들이 남성에게 ‘성관계를 암묵적으로 동의했다’고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한 판사.

사례 4. 회원 수 128만명, 유통된 파일 총 25만개, 압수된 분량만 8테라바이트에 이르는 세계 최대 아동 성학대 사이트를 개설하고, 6개월 영아에서부터 8세, 10세 등 수많은 여아들에게 자행된 성학대 촬영물을 경쟁적으로 올리도록 부추기며 2년8개월간 315비트코인, 드러난 금액만 약 4억여원을 벌어들인 자에게 ‘나이가 어리다’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다’ ‘초범이다’ ‘범죄를 시인하고 반성한다’ ‘회원들이 직접 업로드한 음란물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범죄수익 대부분이 몰수보전 또는 추징보전처분을 통해 환수될 우려가 있다’ ‘최근 결혼해 부양가족이 생겼다’ 등등의 이유로 집행유예나 턱없는 형량을 선고하는 판사들. 다운로드 기록은 있으나 본인의 컴퓨터에서 영상을 삭제해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거나, 아동·청소년 성학대 영상 282건을 배포하고 1128건을 내려 받은 자, 1080개 영상을 내려 받은 자들에게 집행유예를 선언하는 판사들.

사례 5. “레깅스는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성적 수치심을 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피해자가 느꼈을 성적 수치심을 작위적으로 판단해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도 모자라, 불법 촬영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 사진을 판결문 본문에 실은 판사. 마을버스와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여성의 하반신 사진, 몸에 붙는 상의를 입은 상반신 사진은 물론 여성이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사진, 가게 안에서 불법 촬영당한 13세 아동의 허벅지가 찍힌 사진 등은 물론 불법적으로 촬영된 다른 피해자 사진도 공적 기록물인 범죄 일람표에 첨부해 2차 가해를 저지르며 피해자들의 인격권을 침해한 판사들.

사례 6. 태권도 도장에서 13세 소녀 등을 상습 강제추행하고 불법적으로 촬영한 관장, 6세 조카를 성폭행한 삼촌, 15세 여중생을 한 달간 감금하고 성매매시킨 자, 열 살 된 친딸에게 6년 동안 성폭력을 저지른 아버지, 이웃 자매를 성폭행한 남자, 11세 이웃 아동을 성폭행한 남자, 지나가는 아이를 끌고가 성추행한 남자들에게 “대부분 초범이라 재범 위험성이 낮고” “취업제한으로 피고인이 받을 불이익을 우려해” 실수로, 혹은 의지적으로 취업제한조치를 내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형기를 마친 후 자유롭게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취업할 수 있게 선처한 판사.

사례 7. 업소 광고를 빌미로 비동의 촬영물을 찍게 하고 인터넷사이트에 올려 인격권을 침해하며, 회유와 협박으로 강제 성매매시키고 성매매업소를 직접 운영한 자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판사들.

단순히 ‘이상한’ 판사 몇 명의 문제일까요. 가해자는 공히 남성이고 이런 판결을 내린 판사 대부분이 남성인 건 정말 우연일까요. 가해자, 경찰, 검찰을 거쳐 판사로 이어지는 새롭지 않은,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남성들만의 다단계 체인 아닌가요. 가해자에 대한 동일시와 자기연민의 서사로 가득 찬 판결을 통해 그들만의 견고한 성(城)이 최종 완성되는 자리에 여성은 어디 있나요. 무서운 건 남성들의 공고한 지지와 연대가 지속되는 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는 기술의 발전과 자본주의의 변형을 등에 업고 앞으로도 더 치밀하고 더 정교하게 확장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구축된 여성 성착취 유비쿼터스의 암울한 디스토피아 속에서 그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떳떳이 살아갈 것입니다.

대한민국 만세! 남자세상 만세!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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