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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금주의 역사 - 11월 18~24일] ‘잠자던 거인’, 안보리상임이사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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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중국이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이 된 것은 얼핏 큰 뉴스가 아니었다. 1945년 유엔이 창립될 때 중화민국(현 타이완)이 차지했던 자리를 26년 만에 중국이 차지한 것이어서다.

하지만 그것은 소련이 해체돼 러시아가 상임이사국 자리를 물려받은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중국의 안보리 진출은 잠자던 거인이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다는 방증이다. 중국은 언제까지 잠을 잤던가.

20세기까지 자고 있었다. 바로 20세기의 첫해인 1900년에 가장 깊은 잠, 아니 혼수상태에 빠졌었다. 바로 그해 중국은 의화단 사건이라는 역사상 최대의 굴욕을 겪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은 중국이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가장 고난에 빠진 사건을 1840년의 아편전쟁으로 보지만 의화단 사건이야말로 굴욕적이면서도 피해도 컸다. 의화단 사건이라면 1960대 국내에 들어왔던 미국영화 ‘북경의 55일’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사건에 등장하는 당시 세계 8대국(영국·러시아·독일·프랑스·미국·이탈리아·오스트리아·일본)의 군인들은 그 영화에서 미 해병장교로 등장하는 찰턴 헤스턴 같은 신사들이 아니었다.

아편전쟁이 1개국(영국)과의 싸움인 데 비해 의화단 사건은 당시 ‘G8’ 국가의 병사들이 저지른 살인강도, 강간 부대들이 중국을 휩쓸고 다닌 악몽이었다. 아편전쟁이 수도권에서 먼 지역에서 일어난 데 비해 의화단 사건은 베이징 일대를 쑥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G8 가운데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일본과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몰락하고 보니 G4만 남았다. 거기에 중국이 합세해 새 G5를 의미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구성된 것이다. 중국이 같은 세기 내의 71년 만에 역사의 가장 참담한 수렁에서 G5로의 비상하는 기적을 이룬 것이다.

순식간에 탑을 무너뜨릴 수는 있어도 탑을 순식간에 쌓기는 어렵지 않은가. 그것은 비록 잠에 빠져 있었으나 거인의 저력은 사라지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양평(언론인)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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