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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미술의 세계

사회적 약자의 절망·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삶을 응시하다…노원희·윤석남 작가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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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노원희 작가의 ‘얇은 땅 위에’(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유채, 162.1×130.3㎝×2. 학고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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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현실과 부조리를 예술가의 예민한 시각과 조형의식으로 짚어온 두 원로 작가의 작품전이 동시에 열리고 있다.

페미니스트 미술 1세대이자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로 불리는 윤석남(80)과 19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하며 비판적 현실주의와 여성주의적 시각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민중미술가 노원희(71)다. 두 작가는 1980년대부터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더 나은 사회, 삶을 꿈꿔왔다. 윤 작가가 가부장적 젠더구조에 맞서 여성주의 미술·문화운동을 이끌었다면, 노 작가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따뜻한 시선을 준 작품활동으로 사회구조적 문제를 드러내왔다. 윤 작가는 ‘벗들의 초상을 그리다’란 이름으로 OCI미술관(12월21일까지)에, 노 작가는 ‘얇은 땅 위에’란 이름으로 학고재갤러리(12월1일까지)에 작품전을 마련했다.

노원희 작가는 ‘예술과 삶은 서로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예술가적 소신을 지니고 있다. 그에게 지금의 세상, 한국의 사회적 현실은 “얇은 땅”이다. 사회적 약자, 소외된 이들이 디디고 선 땅은 얇다. 얇은 땅 위의 삶은 위태롭고, 불안정하다. 그래서 작품전 이름을 ‘얇은 땅 위에’로 지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약자들이 디디고 선 땅은 어째 더 얇아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한 구절의 전시명에 사회에 대한 비판적 통찰, 약자를 향한 시선이 응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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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희 작가의 ‘자화상 1’(1995), 캔버스에 콜라주·아크릴릭, 65.5×91㎝. 학고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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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최신작까지 36점이 나왔다. 갖가지 몸짓의 인물, 일상적 사물·풍경에 특유의 조형의식으로 사회구조적 문제나 부조리를 녹여낸 작품들이다. 최근작은 현대중공업·쌍용차 노조 집회나 고공농성, 삼성반도체 산재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 광장 사람들 등 구체적 사건·사람들이 소재다. 작품 ‘얇은 땅 위에’는 땅 위에 엎드린 노동자들과 권력·거대 자본으로 상징되는 인물이 극적으로 대비된다. 화면 중앙의 거대한 벽은 불통을 암시한다. ‘기념비 자리2’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씨 등 “얇은 땅 위에서” 죽어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추모한다. ‘청년의 봄’(2003)은 청년들의 절망과 불안한 심정이, ‘집 구하러 다니기’(2006)에는 서민들의 주택 걱정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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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 작가의 ‘신가족’(2019), 혼합매체, 가변크기, OCI미술관 전시 모습. OCI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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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을 소재로 남근성으로 상징되는 권력욕·위선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인류의 고민’, 가부장적 구조 속에서 여성의 삶을 살핀 연작 ‘오래된 살림살이’ 등에선 여성주의적 시각이 돋보인다. 특히 프라이팬을 들고 우뚝 선 ‘무기를 들고’는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는 약자들의 저항의식을 대변한다.

윤 작가는 벗들을 그린 초상화 22점, 자화상 50여점, 설치, 채색화를 선보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여러 해 동안 매달리고 있는 초상화, 채색화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한국화인지 민화인지 장르로 구분하기 힘든 작품들인데 즐겁게 애쓴 작품들”이라고 말했다. 전통 민화 기법·재료를 사용하되 구도·색감 등에서 자신만의 조형성을 강조한 ‘윤석남식 채색화·인물화’들이다.

친구들 초상화나 채색화는 좋은 한지를 골라 민화용 채색안료·먹을 모필로 표현했다. 초상화 속 인물들은 다양한 연령대로 화가·시인·음악가·미술사가 등 작가가 “그림을 하며 만난 고마운 분들”이다. “남자는 한 명도 없다”는 물음에 “사실 남성과는 크게 교류가 없었다”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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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 작가의 ‘자화상’(2018), 한지에 채색, 93×70㎝. OCI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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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작가가 초상화에 빠져든 것은 10여년 전 ‘공재 윤두서 자화상’(국보 240호)과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살아서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전하고 있는 듯한 그 눈빛에 너무 놀랐고, 붓을 들고 먹을 갈고 초상화를 그려야지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 작가는 한국화를 공부하며 특히 초상화, 민화에 몰두했다. 조선시대 여성 초상화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놀란 작가는 당당하게 삶을 가꾸는 여성들을 화면에 담기로 다짐했다.

지난해 전시회에서 첫선을 보인 자화상은 신작을 더해 50여점에 이른다. 그동안 자신의 어머니, 어머니로 상징되는 여성들을 통해 발언해온 작가가 자신의 삶을, 내면을 세심하게 들여다본 결과물이다. 한지에 먹을 주로 쓴 자화상은 관객과 눈맞춤이라도 하듯 정면을 뚫어지게 보는 눈이 두드러진다. 벗들의 인물화, 자화상에서 작가의 개인적·인간적 면모가 보인다면 설치작품에선 여성주의적, 현실 사회와 소통하는 작가의 작품세계가 드러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가족 형태를 담은 ‘신가족’, 광화문광장 촛불집회가 모티브가 된 ‘소리’, 한 시대를 당당하게 살아낸 여성의 외로움·우아함을 담은 ‘허난설헌’이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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