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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GSOMIA의 모든 것]일 경제보복에 안보협력 중단 맞대응…한·미동맹도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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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동’의 시발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 판결이다. 일본은 이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력 반발하면서 일본 기업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한국이 국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해왔다. 이로 인한 한·일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지난 7월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지난 8월22일 GSOMIA를 종료시키는 조치로 맞섰다. 일본이 수출규제의 명분으로 ‘안보상 신뢰’를 문제 삼았기 때문에 한·일 GSOMIA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GSOMIA는 한·일 양국 간의 문제를 넘어 미국의 아시아전략의 핵심과 직결된 사안이다. 한·일 역사갈등이 무역문제로 번진 데 이어 한·미·일 안보문제로 비화하자 미국이 한국에 GSOMIA 종료 조치 철회를 요구하게 됐다.

정부의 GSOMIA 종료 조치에는 한·일 갈등 해결에 미온적인 미국이 적절한 역할을 하도록 촉구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청와대는 미국을 겨냥한 조치가 아니라 한·일 간의 문제임을 강조하고 “GSOMIA 종료 조치로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후 벌어진 상황은 청와대의 설명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정부가 이 문제를 오판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철회되지 않는 한 한·일 GSOMIA는 연장되지 않는다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태도 변화 조짐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미국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으로 이 협정의 효력 소멸 시한인 23일 0시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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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OMIA 협정 비공개 체결 서명식 당일 정부가 2016년 11월23일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서명식을 공개하지 않자 사진기자들이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놓고 청사로 들어오는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에 대한 취재를 거부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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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정보 공유…의무사항 아냐

① GSOMIA는 무엇인가

한·일 정부 간 공유되는 군사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6년 11월 한·일 정부가 체결한 최초의 군사분야 협정이다. 한국은 일본 외에도 30여개국과 이 같은 협정 또는 약정을 체결하고 있다. 국가 간 군사정보를 교환할 때 지켜야 할 원칙과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GSOMIA는 군사정보 보호가 주목적이므로 상대에게 반드시 군사정보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지 않는다. 다만, 정보를 주고받을 때 GSOMIA에서 규정하고 있는 보안원칙·제공경로·관리방법·보호의무 등을 따르라는 것이다. 따라서 GSOMIA를 체결했다고 해서 해당 국가와 의무적으로 군사기밀을 교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한·일 GSOMIA를 통해 오가는 정보의 등급은 2급 군사기밀로 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종종 GSOMIA는 음식을 안전하게 담아 나르는 그릇에 비유되곤 한다.

협정의 유효기간과 연장 방법은 개별 협정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1~5년을 기한으로 하며 체결 당사국 중 어느 한쪽이 연장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자동적으로 연장된다.

만약 한 국가가 협정 만료 시 연장을 거부하면 그로부터 일정 기간이 지난 뒤 효력이 발생하도록 하고 있다. 한·일 GSOMIA는 1년 기한, 자동연장 거부 시 3개월 뒤 종료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8월22일 한·일 GSOMIA 연장 거부 의사를 밝혔으며 이에 따라 11월23일 0시부터 이 협정의 효력이 소멸된다.

■ 체결 후 대부분 일본이 정보 요구

② 한·일, 누가 더 이득인가

GSOMIA 체결로 인해 일본이 얻는 안보이익이 더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은 북한의 단거리 등 각종 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 있지만, 발사 초기 상황을 직접 탐지하기 어렵다. 반면 한국은 각종 레이더와 신호 정보 등을 통해 발사 전 징후까지 포착할 수 있다. 일본이 북한의 미사일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초기에 취득한 정보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반면 북한이 미사일을 남측으로 발사한다면 한국은 자체 정보자산만으로 충분히 잡아낼 수 있다. 일본은 고성능의 정보자산을 한국보다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북한이 미사일을 동해상으로 쐈을 때 종말 비행상황과 낙하지점 등의 정보만 얻을 수 있다. 이런 정보도 한국이 미사일의 탄종을 분석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 것으로 군 당국은 보고 있다.

GSOMIA가 체결된 이후 32건의 정보 공유가 이뤄졌지만 대부분 일본이 먼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경두 국방장관도 지난 8월 국회에서 “GSOMIA가 군사정보 교류 측면에서 그렇게 효용가치가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유용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더 득을 본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 일 경제보복에 안보협력 ‘불신’

③ 정부는 왜 종료시켰나

정부의 GSOMIA 종료 결정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크다. 일본이 안보상 신뢰를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배제했으니, 양국 간 안보협력을 이전처럼 추진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안보상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체결한 협정을 지속시키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청와대가 지난 8월22일 GSOMIA 종료를 발표하면서 내놓은 설명이다.

사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 당일까지도 정부가 ‘조건부 연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GSOMIA라는 틀을 유지하되, 한·일 갈등 해소 전까지 실질적 정보 공유는 하지 않는 방향이다. 주무부처인 외교부·국방부 내 기류도 신중론에 기울어 있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전격 종료를 결정한 이유는 GSOMIA를 지렛대로 미국의 적극적 ‘중재’를 이끌어내겠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일 강경 노선에 대한 국내 여론 지지가 높다는 점도 고려했을 수 있다.

정부는 미국과 GSOMIA 문제에 대해 수시로 협의했고, 미국도 한국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은 종료 결정 이후부터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를 향해 공개적으로 실망과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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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OMIA 종료 결정 당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22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을 보고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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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일 협력 상징적 도구 여겨

④ 미국은 왜 민감한가

미국은 GSOMIA를 한·미·일 안보협력의 상징적 도구로 여긴다.

협정 당사자는 엄연히 한국과 일본임에도, GSOMIA 유지를 미국이 강력하게 촉구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12년 6월 밀실 추진 논란에 휘말려 좌초된 GSOMIA가 4년여 만인 2016년 11월 정식으로 체결되기까지에는 미국의 압박이 크게 작용했다.

한·미·일 안보협력은 중국 견제를 제1 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떠받치는 핵심축이기도 하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골자는 미국·일본·인도·호주가 중국을 포위하는 것인데, 군사 분야에서 한·미·일 간 원활한 공조가 관건이다. 지난 6월 미 국방부가 펴낸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도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이 역내 평화와 안보 유지의 핵심이라고 명시했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유지시키는 틀인 GSOMIA 종료 결정이 미국의 안보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미 정부 고위 인사들이 너나없이 GSOMIA 원상복구를 압박하는 것도 자국 이익이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 때문이다.

“GSOMIA 종료나 한·일관계의 계속된 갈등, 경색으로부터 득을 보는 곳은 중국과 북한” 등의 발언이 미국의 속내를 드러낸다.

■ ‘안보’ ‘수출’ 문제 다르다 판단

⑤ 한국만 압박하는 미국 왜

GSOMIA를 중시하는 미국의 태도로 인해 이제껏 미국의 압박이 한국에 비대칭적으로 작용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 외교안보 당국자들이 일제히 한국에 GSOMIA를 연장하라고 파상공세를 벌이는 것에 비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서는 사실상 침묵을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같은 미국의 상반된 태도에는 GSOMIA 종료 결정과 수출규제 조치라는 문제의 본질이 다르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GSOMIA는 미국 안보 전략의 핵심에 속하는 문제인 반면, 수출규제 조치는 한·일 양자 간 분쟁적 사안에 속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행정부와 달리 동맹 관계를 개선하는 데 관심이 적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다만 미국이 물밑에서는 일본 정부에 한·일 갈등 해결을 주문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17일 태국 방콕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일 협력 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며 “우리에게만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고 밝혔다.

■ 정보, 미국 경유 땐 지연 우려

⑥ TISA가 대안 될 수 있나

정부는 GSOMIA가 종료되더라도 2014년 12월 체결된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을 근거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3국의 안보협력에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TISA를 통해서는 한·일이 정보를 직접 공유할 수는 없고 미국을 경유해야 한다. 긴박한 상황에서 정보 공유 시간이 지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이다. TISA도 GSOMIA와 같이 2급 이하의 기밀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TISA는 북한의 핵·미사일 정보만 공유할 수 있다.

GSOMIA는 핵·미사일과 관련된 간접적인 정보도 포함돼 공유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가 넓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TISA 체제에서는 일본이 미사일을 장착한 북한 잠수함을 발견하더라도 한국은 해당 정보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랜들 슈라이버 미국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는 지난 6일 NHK에서 TISA를 두고 “비효율적이며 현재의 안보 환경에서 최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긴박한 상황이면 TISA를 통해서도 신속하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GSOMIA가 종료되는 것에 대비해 TISA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안을 거론한다. 그러나 GSOMIA가 TISA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체결됐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도 “구체적으로 그런 안을 갖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말했다.

■ 북핵·무역 등 한국 입지 줄어들 듯

⑦ 종료 땐 무슨 일 벌어지나

한·일 GSOMIA가 만일 이대로 종료될 경우 향후 한·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지금 단계에서 예단하기 어렵다. 한국이 GSOMIA를 종료시켰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한국에 부과되는 징벌적 의무는 없다.

이 문제는 한국이 직접적으로 미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일본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불똥이 튄 것이라는 점을 미국도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들어놓은 동북아지역에서의 대중국 견제장치 중 하나를 한국 정부가 없애버린 것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없을 수 없다. 미국은 문재인 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을 축으로 하는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에 협력할 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또한 동맹에 대한 인식이 박약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동맹에 대한 편견을 더 강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모든 전문가들은 이 결정이 한·미관계를 어렵게 만들고 결국 외교안보 지형상 미국의 협조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한국이 한·미관계에서 일정한 코스트(비용)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북핵문제, 방위비 분담, 남북관계, 통상 무역 분야 등 모든 한·미 간 현안에서 한국의 대미 설득력이 약화되고 입지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 미 “중국 견제”…중 반발 부를 듯

⑧ 다시 체결하면 안 되나

일각에서는 이번에 협정을 종료시킨 뒤 일본의 수출규제가 풀리고 한·일 갈등이 일단락된 이후 다시 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재체결을 추진하려면 정부가 그에 따른 국내외적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이 협정은 2012년 추진되다가 밀실협상 논란으로 무산되고 이명박 정부의 안보 분야 실세였던 김태효 당시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 물러나는 파동을 겪었다. 결국 2016년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밀려 협정을 체결했지만 당시에도 국민적 거부감이 상당히 강했다. 따라서 협정 종료 이후 다시 체결하려면 정부가 그에 못지않은 정치적 부담을 또 한 번 감수해야 한다.

중국의 움직임도 변수다. 2015년 체결 당시에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 대처를 명분으로 내세웠던 미국이 이번에는 협정 종료 철회를 압박하는 과정에서 이 협정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안보협력’의 핵심이며 “GSOMIA가 없어지면 중국과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때문에 한국이 향후 일본과 협정 재체결을 추진할 경우 중국이 이에 반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칫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도입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이 미·중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압박을 받는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유신모·김유진·정희완 기자 si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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