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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미술의 세계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 ‘거짓말’ 들춰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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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술관 ‘보통의 거짓말’ 기획전 / ‘가만히 있으라’ 거짓말에 별 된 아이들 / 세월호 참사 희생자 애도 담은 ‘마지막 밤’ / 술병 든 공주들·얼굴 시술받는 왕자/ 동화 주인공 모습 사실과 다름 보여줘 / 국내외 23팀, 회화·사진 등 통해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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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작가 릴리아나 바사라브의 영상물 ‘아담과 이브(Adam and Eve)‘의 한 장면. 서울미술관 제공


#1.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와 남자. 여자는 하늘에서 빨간 사과를 똑 하고 따 남자에게 건넨다. 남자는 여자가 주는 사과를 받지도, 거절하지도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응시한다. 그 사이 30초짜리 영상은 끝이 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여자는 또 사과를 건네길 반복한다. 과연 남자는 사과를 받아 들었을까. 루마니아 작가 릴리아나 바사라브의 영상물 ‘아담과 이브(Adam and Eve)’다. 인류 최초의 거짓말로 불리는 성경 속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이야기가 주제다. 아담이 선악과를 끝내 먹지 않았다면 인류는 거짓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반복되는 영상과 음악은 종종 선악과를 앞에 두고 고민에 빠지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2. 시름에 잠긴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등 동화 속 공주들이 한데 모여 술병을 들고 있다. 왕자는 얼굴에 시술 주사를 맞는다. ‘공주와 왕자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던 동화 속 결말과는 다른 풍경이다. 멕시코 팝아티스트 로돌포 로아이자는 고정관념을 깨는 이미지를 통해 동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거짓말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믿는 아름다운 실체의 내면이 추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 2월16일까지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석파정 서울미술관 본관에서 열리는 대규모 기획전 ‘보통의 거짓말(Ordinary Lie)’은 태초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반복하고 있는 거짓말에 대해 탐구한다.

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23팀이 참가해 회화, 사진, 영상, 미디어아트, 설치, 조각 등 현대미술 전 장르에 걸친 작품으로 우리 삶 속에 가득 찬 거짓말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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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작가의 ‘후 아 유(Who are you) 1+2+3’. 작가는 수동적이고 획일적인 허상의 존재가 되어가는 현대인들이 거짓이 아닌 참된 자아를 어떻게 확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서울미술관 제공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등 위트 있는 공간 주제가 전시를 거짓말처럼 경쾌하게 이끈다.

전시는 일상 속 사소한 거짓말부터 국가와 사회, 미디어가 해온 거짓말까지 온갖 거짓말의 실체를 조명한다. 독일에서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장연호의 ‘마지막 밤’은 죽음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애도를 담아 표현한 작품이다. 별처럼 나타난 여자를 쓰다듬고 이불을 덮어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가만히 있으라’는 거짓말에 별이 된 아이들의 혼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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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종완 작가의 ‘탈’. 진실하기 위해 껍질을 벗어던지는 일탈을 감행하고, 껍질을 깨고 다시 날아오르는 것을 통해 진실을 마주하는 자아의 모습을 표현한다. 서울미술관 제공


중국 작가 장즈는 작품 ‘0.7% 솔트(salt)’를 통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려운 대중매체의 실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영상 속에는 ‘진관희 누드사진 유출 파문’으로 강제 은퇴한 가수 겸 배우 질리안 청이 웃다가 울부짖는 미묘한 감정 변화를 보인다. 영상을 보며 누군가는 그의 아픔에 공감하고, 누군가는 재기를 위한 쇼라고 비난한다. 진실과 거짓, 이에 대한 잣대의 기준은 관람객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지배의 도구로 사용되는 미디어, 집과 도시라는 공간이 가진 계층적 구조와 권력,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통해 바라본 사랑 등 다양한 거짓말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2층 전시장 일부에서는 올해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설은아 작가의 개인전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도 만나볼 수 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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