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여년이 흘러 1300년경 흑사병은 중앙아시아의 평원지대에서 출현했다. 실크로드를 오가는 유목민을 통해 서쪽으로 이동했다. 1340년대 말 아시아와 유럽의 접경지역에서 노예무역을 하던 이탈리아 상선이 전염병을 유럽으로 실어날랐다. 10년간의 창궐로 유럽인구의 30~60%가 사망했다. 심리적인 불안은 미신을 증폭시켰고 부랑자, 유대인, 한센병 환자들이 발병자로 지목돼 살해됐다. ‘흑사병 의사(Medico della peste)’들도 출현했다. 그들은 새부리 모양의 가면과, 장갑, 장화, 챙 달린 모자, 발목까지 오는 겉옷을 입었다. 흑사병 의사 가면은 지금도 이탈리아에서 기념품으로 팔린다.
19세기 프랑스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발병 원인과 치료법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박멸된 건 아니다. 21세기에도 매년 흑사병 환자가 발생한다. 아프리카 지역에 많다. 중국에서는 2014년 3명, 2016년, 2017년에는 각각 1명이 사망했다. 지난 12일 중국에서 2명이 흑사병 판정을 받은 데 이어 17일에 추가 환자가 나왔다. 괴담도 돌고 있다. 흑사병 환자 발생 사실이 20여일이 지난 뒤에야 공개됐기 때문이다. 그 사이 확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병 때도 당국이 보안에 급급하다 전염병을 키운 사례가 있다. 중국 당국이 흑사병 관련 온라인 토론의 통제에 들어갔다고 한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전염병은 하루도 안돼 지구 반대편으로 확산될 수 있다. 과거엔 전염병 확산이 무지에서 왔지만 이젠 은폐의 결과일 수 있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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