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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기고]인공지능 판사와 프레디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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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임영익 인텔리콘 메타연구소 대표


올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인공지능(AI) 판사를 도입하라'는 글이 60건 넘게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 화두로 떠오른 AI 판사는 '터미네이터' 같은 로봇판사가 아니다. 판사 업무나 재판 진행에 도움을 주는 조력 시스템이나 판결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의미한다.

최근 유명해진 AI 판사는 2016년 영국과 미국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재판예측 알고리즘이다. 이 알고리즘은 유럽인권재판소(ECHR) 판결 사례를 학습하고 ECHR의 사건 5건 가운데 4건과 같은 결론에 도달, 80%에 가까운 놀라운 예측 성능을 보였다.

재판예측 연구는 1963년 리드 롤러라는 학자가 컴퓨터를 이용한 재판예측 기법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며 본격 시작됐다. 이후 괄목할 만한 성과는 2004년 앤드루 마틴 등이 발표한 미국 연방대법원 재판예측 알고리즘이다. 당시 판사들은 재판예측에 대한 의심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연구팀은 그 가능성을 피력하기 위해 법률 전문가와 컴퓨터의 '재판예측 대회'를 열었다. 결과는 놀랍게도 인간의 참패였다. 법률 전문가가 예측한 재판 결과의 정확도는 59%에 머물렀지만 컴퓨터는 무려 75%의 예측 정확도를 보였다. 이후 재판예측은 미국의 대니얼 카츠 교수의 노력에 힘입어 많은 발전을 이뤘다. 카츠 교수는 2014년 미국 연방대법원 재판 예측을 더욱 효율화한 진화된 알고리즘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학술 연구를 넘어 실전에 AI 재판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인구 140만명에 불과한 북유럽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는 소액사건 재판이 가능한 AI 시스템 개발에 들어갔다. AI가 의사결정을 하고, 당사자가 결과에 불복할 경우 인간 판사에게 정식재판을 청구한다.

한편 중국은 '206'이라는 AI 재판 도우미를 법정에 도입했다. 2018년 5월부터 여러 도시에서 실험을 마친 '206'은 이제 형사재판에 본격 활용된다. 판사, 검사, 변호사가 관련 증거를 시스템에 요청하면 그 결과를 컴퓨터로 보여 준다. 강도살인 사건을 심리한 '206'은 증거 자료로 감시카메라 영상을 재생하거나 정신 감정서 등 증거를 종합 검토한다.

사실 미국은 일찌감치 재판에 AI나 컴퓨터를 활용해 왔다. 미국 버지니아주와 오리건주 중심으로 가석방 관련 재범 위험성을 예측하는 알고리즘 연구가 있었다. 이 알고리즘은 오리건주 내 범죄자 5만5000명의 데이터를 이용했다. 최종 완성된 모델은 지난 30년 동안 범죄자 35만명에 대한 검증을 통과했다.

이제 알고리즘은 판사 형량 판단에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실제 알고리즘이 형사재판의 형량을 결정한 예로는 '루미스 사건'을 대표로 들 수 있다. 2013년 에릭 루미스는 총격 사건에 사용된 차량을 운전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형량판단 알고리즘인 컴퍼스(COMPAS)를 이용해 중형을 구형했다. 루미스는 검찰 구형을 법원이 그대로 인용한 것은 위법이라고 항소했다. 그러나 2017년 미국 위스콘신주 대법원은 AI가 판단한 형량을 기초로 루미스에게 중형을 선고한 판결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앞에서 살펴본 여러 법률AI시스템은 모두 기계학습이라는 AI 방법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기계학습은 인간이 모든 규칙을 외부에서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스스로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해 규칙을 알아내는 컴퓨터 일체 기법이다.

기계학습 대표 선수인 딥러닝은 시각지능, 언어지능, 예술지능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딥러닝의 숨은 진가는 단순히 인간지능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예측하는 존재, 즉 '프레디쿠스'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알파고'의 아버지 하사비스는 지난해 '알파폴드'라는 단백질 접힘 예측 알고리즘을 발표했다. 단백질 접힘을 예측한다면 신약 개발에 일대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이제 딥러닝은 인간사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프레디쿠스로 진화하고 있다.

임영익 인텔리콘 메타연구소 대표 ceo@intell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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