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 “한반도 외교 기회 사라지면 미국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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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가 21일(현지시간) 한미동맹이 재정립돼야 한다면서 한미 방위비 협상에 대해서도 “힘든 협상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맡아 온 그는 이날 국무부 청사에서 한국의 여야 3당 원내대표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자유한국당 나경원,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는 미국의 방위비 대폭 증액에 대한 우려를 미 행정부와 의회에 전달하기 위해 지난 20일 미국을 방문했고, 이날 비건 지명자와 면담을 했다. 나 원내대표는 면담 종료 후 한국의 특파원들과 만나 “비건 대표가 1950년 이후 ‘한미동맹의 재생’이라는 표현을 썼다”며 “결국 방위비 증액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방위비 협상)는 새로운 동맹의 틀에서 봐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의 한미동맹과는 (다른) 새로운 틀의 동맹을 얘기하면서 좀 더 높은 수준의 역할과 분담을 요구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덧붙였다.
오 원내대표도 “미국이 세계에서 역할을 향후 어떻게 셰어(share)하고, 함께 나눠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 같다. 비용 문제도 연장선상에서 고민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비건 지명자가 방위비 협상에 대해 “과거의 협상과는 다른 어렵고 힘든 협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한 뒤, 미 국무부가 상당히 전략적으로 준비해 확고한 전략을 갖고 있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나 원내대표가 사용한 ‘재생’이란 단어와 관련, 비건 지명자는 면담에서 ‘rejuvenation(원기회복)’, ‘renewal(재생)’ 등의 표현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 대한 방위비 증액 압박을 미국 입장에서 보면 단순히 비용 측면만이 아니라 한미동맹 관계를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보다 큰 틀의 문제의식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미 당국자들이 한국에 대해 ‘이제는 부자나라가 됐다’고 보고, 방위비 분담에서도 더 큰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접근 방법과 궤를 같이하는 인식인 셈이다.
이에 대해 3당 원내대표들은 “큰 상황 변동이 없는 상태에서 과도하고 무리한 일방적 증액 요구를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고 이 원내대표가 전했다. 그는 또 “굳건한 한미동맹 정신에 기초해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바탕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위비 분담 협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도 덧붙였다. 또 비건 지명자에게 “부장관이 되면 한미동맹이 더 튼튼해지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매듭지어지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고, 비건 지명자도 “부장관이 되면 좀 더 살펴보겠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문제와 관련해선 비건 지명자가 오히려 원내대표들에게 진행 상황을 물어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내대표는 “이수혁 주미 한국대사를 통해 듣는 게 좋겠다”고 답했다. 비건 지명자는 아울러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 “종국적인 목적은 모든 대량살상무기 등의 제거”라고 했고, 북한이 미국에 ‘새로운 셈법’의 시한으로 연말을 제시한 데 대해선 “데드라인을 두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자신의 협상 파트너가 돼야 한다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최 부상은 22일 “협상 대표는 각기 그 나라에서 지명하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그는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우리에게 상응 조치를 취하지 않아 조선반도(한반도)에서 외교의 기회가 사라질 경우, 그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 측이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시간도 줬고 신뢰 구축 조치도 취했으나, 우리가 (미국한테서) 받은 상응 조치는 아무것도 없다. 받아낸 건 배신감뿐”이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미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다시 한번 표출한 셈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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