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51)
상드의 노앙 저택에서는 극이 공연되기도 했다. 쇼팽은 극의 음악을, 상드는 극본을 제공했다. 상드의 가족, 집에서 일하는 사람, 주민들은 무대를 만드는 스태프이기도 했고 배우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관객이기도 했다. 상드는 만년에 극을 많이 썼는데 그녀의 극은 노앙의 저택에서 먼저 공연되는 경우가 많았다.
솔랑주. 조르주 상드의 딸. 남편 클레징제 그림. 1851년. 파스텔화. Musée de la Vie romantique, Paris 소장. |
나중에는 아예 저택 내에 극장을 만들었고, 그 극장의 한쪽 옆에는 인형극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었다. 아들 모리스는 극에 필요한 인형을 만들었고 상드는 인형의 옷을 만들었다. 인형극은 상드가 아들의 기를 살리는 방편이기도 했다.
하지만 노앙의 저택에서 일어난 가장 흥미진진하고 리얼리티가 넘치는 드라마는 그 집 딸의 결혼과 이어지는 일련의 소동이었다. 가족과 손님이 얽히고, 불륜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 막장드라마에 쇼팽은 주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쇼팽에게 불똥이 튀어 그는 중요한 피해자가 된다.
드라마는 결혼 적령기에 달한 솔랑주로부터 시작된다. 애정에 목마른 솔랑주는 입양한 딸 오귀스틴에게 엄마의 사랑이 집중되는 것을 보고 환멸을 느꼈다. 솔랑주는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것은 엄마 상드의 바람이기도 했다.
솔랑주의 첫 후보자는 시골 청년 페르낭이었다. 1846년 6월 초, 상드와 솔랑주는 베리 지방 경마대회에서 그를 만났다. 상드는 베리 승마클럽의 총무였다. 24세의 그 청년은 귀족 가문출신이었고 큰 키에 날씬했다. 페르낭은 양산을 들고 솔랑주를 따라 다니며 친절을 베풀었다. 재력이 많지는 않았지만 시골 풍의 수수하고 착해 보이는 그가 상드는 무난해 보였다.
7월 말, 페르낭이 솔랑주를 보러 노앙을 방문했다. 솔랑주는 그 청년이 싫지 않은 표정이었고 쇼팽도 그 청년을 점잖다고 생각했다. 9월에 두 사람은 약혼했다. 결혼 준비는 순조로웠다. 이듬해 2월, 노앙에 있던 상드가 딸 솔랑주를 데리고 파리로 올라왔다. 솔랑주의 결혼에 필요한 마무리 준비를 하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드라마의 서막이었다.
2월 18일, 상드가 클레징제의 스튜디오를 방문할 때 솔랑주를 데려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린 막장드라마가 본 괘도에 오른다. 상드는 결혼하려는 딸의 초상화를 부탁하려고 그곳에 갔다. 당시 예술계에 좀 알려져 있던 조각가 클레징제는, 잘 팔리는 작가 상드에게 다가가려고 전부터 노력하고 있었다. 침이 마르도록 자신을 칭송하는 그와, 상드는 이미 여러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었다.
쟝 밥티스트 클레징제(Jean-Baptiste Auguste Clésinger, 1814-1883). 펠릭스 나다르 사진. 오르세이 미술관 소장. [사진 Wikimedia Commons] |
클레징제는 기병대 출신으로 남성미 넘치는 당당한 모습으로 주목 받았다. 그는 늠름했고 야심만만했다. 당당한 그의 모습에 상드가 관심을 보였다. 모녀는 이 조각가의 즉각적인 제안에 따라 자신들의 흉상의 제작을 의뢰했다. 클레징제는 상드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매일 상드의 아파트로 꽃과 선물이 날아들었다.
클레징제라는 이름이 오르내리자 쇼팽은 그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놀랍게도 그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그는 빚쟁이에, 술 주정뱅이였고, 성질은 난폭했으며, 행실도 바르지 못하여 하녀에게 폭력을 일삼고 있었다. 게다가 솔랑주가 나타나자 자신의 아이를 가진 하녀를 인정사정 보지 않고 내쫓았다. 그는 돈을 보고 상드와 솔랑주에게 접근한 것이 분명했다.
들라크루아와 마를리아니 부부 그리고 상드의 친구 엠마누엘 아라고도 클레징제의 나쁜 평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상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권고할 뿐이었다. 쇼팽은 자신의 정보와 느낌을 상드에게 전하며 신중을 권했다. 주위의 권고를 들은 상드는 그 조각가에게 조용한 일대일의 면담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만남 후 상드는 ‘그는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는 자격을 가진 남자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상드는 주위 사람들이 의아해할 정도로 클레징제와 솔랑주의 관계를 몰고 갔다. 그 조각가에게 오히려 상드가 더 빠진 것 같았다. 상드는 클레징제가 강한 보스기질로 솔랑주의 다루기 힘든 성격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모녀는 거의 매일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하여 포즈를 취했다.
상드는 그의 스튜디오에 솔랑주를 혼자 두어 둘의 사랑을 조장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처음 클레징제를 엉뚱하고 못생긴데다가 비위에 거슬린다고 하던 솔랑주도 마음이 달라진 것 같았다. 페르낭과의 약혼은 취소되었다.
4월초, 상드와 솔랑주는 노앙으로 내려갔는데, 적극적인 클레징제는 초대하기도 전에 노앙으로 방문을 자청했다. 며칠 후 노앙으로 내려간 그는 상드를 밀어붙였다. 그는 24시간의 기한을 주고 가부(可否)의 결정을 요구했다. 클레징제는 상드의 주위에 있는 연약한 남자들과 완전히 달랐다. 그녀는 전제군주 같은 그의 모습에 흡족해 했다.
상드의 승낙을 얻어낸 그는 다시 신부의 아버지 뒤드방 남작에게도 달려가서 승낙을 받아냈다. 상드는 “솔랑주가 매우 행복해 한다. 나 또한 행복하다. 그는 진짜 남자이다. 딸에게도 나한테도 매력을 보였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떠들었다. 새로운 약혼이 맺어졌다. 결혼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쇼팽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쇼팽은 클레징제를 좋아하지 않았고 결혼도 탐탐치 않았다. 그것을 잘 아는 상드는 약혼사실을 쇼팽에게 말하지 말라고 주위에 부탁했다. 결정은 이미 내려졌고 ‘만약’이니 ‘그러나’니 하는 것은 해만 끼칠 뿐이었다. 상드는 속으로 이때 이미 쇼팽이 이 결정에 자꾸만 간섭하면 끝장을 보겠다고 결심한 상태였다.
노앙의 생 마르탱 교회. [사진 Wikimedia Comm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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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에 있을 결혼식에 대해 쇼팽은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다. 노앙의 작은 교회에서 열린 이 결혼식에 쇼팽은 참석하지 않았다. 상드는 쇼팽에게 먼 길 오지 말고 그냥 파리에 남아있으라고 권고했다. 몸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쇼팽은 매우 섭섭했다. 결혼에 대해서는 상드의 결정일 뿐만 아니라 솔랑주의 선택이기도 했으므로 어쩔 수 받아들였다.
쇼팽은 솔랑주에게 결혼 축하의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솔랑주의 앞날에 대한 걱정은 피할 수 없었다. 쇼팽의 그녀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그는 클레징제가 재능이 있고, 미술에 소질도 있으나, 둘이 아이를 낳은 후 일년도 못 갈 것으로 보았다. 쇼팽은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실현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상드의 친딸 솔랑주의 결혼은 소박했다. 이는 전에 있었던 하녀의 결혼식이 상드의 주도하에 3일 밤낮에 걸친 마을 축제로 진행된 것과 비교되었다. 그런데 솔랑주와 클레징제의 결혼뒷이야기는 전혀 소박하지 않다. 그것은 클레징제와 솔랑주의 사랑이 익어가기 전에 있었던 상드와 예비 신랑의 수상한 관계에 관한 것이다.
솔랑주의 결혼식이 있기 2주일전 상드가 들라크루아에게 보낸 편지에는 18세의 딸을 무르익은 성적 대상물로 보고 예비 신랑이 딸을 어떻게 다룰 지에 대한 얘기가 있다. 같은 날 아라고에게 보낸 다른 편지에는 마치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듯한 약혼자의 남성적 능력에 대한 암시가 있다.
두 편지는 내용이 매우 노골적이고 짙다. 상드는 들라크루아에게, 편지에 쓴 말들이 적절한 것이 아니라며 그 편지를 태워달라고 했다. 상드가 때마침 그런 노골적인 생각을 품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클레징제는 상드를 먼저 유혹했다.
그 조각가는 상드에게 먼저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고 이것은 효과가 있었다. 상드는 자신의 성향을 이어받은 솔랑주가 문란한 삶을 살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았는데 강한 남성만이 딸에게서 그러한 가능성을 없앨 것이라고 생각했고, 클레징제가 그러한 일을 해내기에 적합할 것으로 결론 내렸다. 그리고는 둘이 사랑에 빠지도록 북돋았다.
노앙 저택 내의 극장. [사진 송동섭] |
이 결론을 뒷받침하는 분명한 단서도 있다. 딸의 결혼 즈음에 씌어진 상드의 또 다른 편지 한 쪽 구석에 기입된 솔랑주의 메모이다. 상드가 세상을 떠난 후 쓰여진 이 메모는 다음과 같다. “놀라운 이야기. 솔랑주가 결혼하려던 그 사람은 한 때 G.S.와 소설 같은 열정적 관계에 있었다.” G.S.는 물론 조르주 상드를 의미한다.
솔랑주는 제3자의 시점에서 상드와 클레징제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솔랑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하게 된다. 클레징제와의 결혼은 솔랑주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 한 이유였다. 엘리자베스 할란(Elizabeth Harlan의 저서 『조르주 상드』 19장 참조)은 솔랑주의 메모가 상드의 잘못된 행동과 그릇된 판단에 대한 뒤늦은 항의의 표시라고 했다. 딸은 그 책임의 일부를 엄마에게 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다음 편은 상드 가족의 막장 드라마의 후속 장으로 노앙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장모와 사위의 몸싸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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