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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미술의 세계

옛시대 일상용품 청자·백자… 어떻게 한국 명작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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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이광표 / 에코리브로 / 1만9500원


명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이광표 / 에코리브로 / 1만9500원

2010년 충남 태안의 바다에서 고려청자 매병 2점이 발굴됐다. 매병 자체가 귀한 것이긴 했지만 특히 함께 나온 목간이 주목을 받았다. 목간은 훗날 보물 1783호, 1784호로 지정된 아름다운 이 고려청자가 참기름과 꿀을 담은 단지라는 사실을 적고 있었다. 흔히 고려청자는 한국미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간주하지 그것이 당대에는 일상용품이었다는 걸 인식하는 데 익숙지 않다는 점에서 이런 사실은 흥미롭다.

죄다 그렇다고야 할 수 없지만 당대인들에게 일상용품일 뿐이었던 문화재는 수없이 많다. 멀리는 선사시대의 돌도끼와 빗살무늬토기 등이, 가깝게로는 조선의 백자, 기와, 건축물 등이 그렇다. 그렇다면 일상용품이었던 이런 물건들이 언제부터, 어떻게 한국미를 대표하는 미술품으로 수용되기 시작했을까. 책은 이런 의문을 던지며 고미술의 집합체인 ‘컬렉션’이 형성되는 과정, 그것이 박물관·미술관이라는 근대의 시스템과 결합하여 집단화, 사회화된 가치 혹은 기억의 대상으로 바뀌는 과정을 추적한다.

한국미를 대표하며 국내외 경매에서 수십억원에 거래되기도 하는 백자 달항아리의 사례를 보자. 책에 따르면 달항아리는 17세기 후반부터 약 100년간 제작되어 조선 자기의 역사에서 그린 긴 시간을 점유하지 못했다. 적극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한 건 20세기 중반부터였다. 백자 수집가이자 20세기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김환기의 열정과 심미안이 큰 역할을 했다. 김환기는 “백자에 심취해 수집을 하고, 이어 백자의 미학을 발견한” 선구자였다. ‘백자와 꽃’, ‘새와 항아리’, ‘항아리와 여인’ 등의 뛰어난 작품도 남겼다. 또 크기와 형태를 나타낼 뿐인 ‘백자대호’, ‘백자원호’라는 이름 대신 ‘달항아리’란 명칭을 붙여 “달이 지니고 있는 문학적·예술적·철학적 이미지를 연결시켜” 주었다. 저자는 이것이 “백자의 감상과 수용의 역사에서 보면 달항아리라는 새로운 명명은 일대 혁신이었다”고 평가한다.

달항아리의 경우처럼 과거의 특정한 물건이 미술품이 되는 것은 “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거기 담긴 아름다움을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20세기 들어 확립된 박물관, 미술관의 전시를 통해 대중과 만나면서 “일상용품은 컬렉션과 미술품이라는 새로운 존재로 자립하게” 된다. 저자는 이런 수용과정에서 “대중은 (유물의) 과거의 본질이나 가치, 사용 당시의 맥락을 기억해 내고, 다시 자신이 처한 시대의 기억을 새롭게 축적한다”고 강조했다.

‘명작의 탄생’ 과정을 ‘생산’이 아닌 ‘소비’에 관점에서 분석한 시각이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문화재의 유통, 수용의 과정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어 독서의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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