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그 욕망은 별난 게 아니다, 본능이다
책쓰기는 세상에 없던 것 창조
개인적·독립적인 만족감 준다
본능 억지로 누르면 공허해질 뿐
굶주린 당신, 종이와 펜을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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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책으로 소통하는 사회, 책을 쓰면서 변하는 삶은 물론 멋지지만, 그것뿐이라면 책 쓰기를 이렇게 열을 내어 권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책 쓰기는 아주 독특한 충족감을 준다. 사실 나는 책 쓰기를 비롯한 창작 행위가 인간의 본능이라고 믿는다.
사람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매우 다양하며, 행복한 삶의 비결은 그 다양한 즐거움을 골고루 누리는 데 있다. 균형 잡힌 식사와 같다. 사람은 우선 여러 가지 몸의 기쁨을 꾸준히 얻어야 하고, 동시에 친밀하고 건강한 대인 관계에서 나오는 정서적 안정감도 누려야 한다. 목표를 이루며 성취감을 얻고, 일을 하며 집단에서 인정받고 자신의 쓸모를 확인해야 한다. 때로는 군중집회나 종교 행사에서 자아를 잊고 보다 거대한 무리 속으로 녹아들어가기도 해야 하며, 아름답고 감동적인 서사나 풍경을 접하고 감정이 고양되는 경험도 종종 필요하다. 그런 즐거움들에는 꽤나 뚜렷한 구분이 있어서, 한 범주 안에서는 그럭저럭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쾌락들이 교환 가능하지는 않다. 밥 대신 빵을 먹으며 탄수화물을 섭취할 수는 있지만, 밀가루 음식만으로 단백질 부족을 해결하기는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근력 운동으로 상쾌한 기분과 적당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게 외로움까지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다행히 현대사회는 그런 즐거움들을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어떤 쾌락은 상대적으로 얻기 쉽다. 미식의 기쁨은 대개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세상에는 미각에 장애가 있는 불운한 이들도 있고, 와인이나 송로버섯처럼 값이 비싸고 음미하기 위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한 음식물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감동적인 서사와 시청각의 스펙터클도 구하기 쉬워졌다. 서점, 도서관, 레코드 가게,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극장, 영화관, 오페라하우스, 패키지 여행 상품이 모두 그 해결책에 해당한다. 150년 전까지 훌륭한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에 공연장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이 분야에서 현대인은 얼마나 풍요롭게 살고 있는가.
인간관계는 까다로운 분야다. 많은 이들이 이 문제로 고민한다. 의학, 심리학, 교육학, 뇌과학, 사회학, 때로는 건축이나 도시 설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의 연구 과제다. 그러나 그만큼 역사적, 사회적으로 많은 답안이 제시됐고, 지금도 새 방안이 나오고 있다. 마음이 잘 맞는 타인과 유쾌한 친밀감을 얻기 위해 호모 사피엔스가 개발한 문화와 기술은 엄청나게 많다. 분위기 좋은 호프집(영양 섭취보다는 사교가 목적인 장소)에서 정기행사 뒤풀이 모임(사회적 관습)을 열고, 맥주(역사가 오랜 향정신성 약물)를 마시며 무해하지만 뻔한 분위기 띄우기용 유머(대화의 기술)에 맞장구를 치는(예의범절) 인터넷 동호회(정보통신기술과 도시문화의 결합) 회원들을 상상해보라. 큰 집단이나 영성과의 합일감을 느끼는 데 있어서는 오히려 현대인이 선조들보다 서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근 가능한 해결책들이 있다. 교회 예배와 같은 오래된 의례나 축구 경기 관람 등이다.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명상센터나 레이브 파티도 있다.
레고가 살아남은 이유는?
살면서 맛볼 수 있는 기쁨 중에는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도 있다. 이 역시 본능적인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바닷가에 데려가면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열심히 모래성을 쌓는다. 상당수 아이들이 그런 창조적인 일을 컴퓨터 게임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1990년대 가정용, 휴대용 게임기들이 보급되자 많은 전문가들이 레고가 큰 타격을 입을 걸로 내다봤으나, 결과는 그 반대였다. 아이들은 ‘완성된’ 레고 작품을 견디지 못한다. 끊임없이 부수고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창조의 즐거움은 나이가 들수록 누릴 기회가 줄어든다. 어른이 되면 사실상 거의 사라진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뭔가를 새로 만들어내기보다는 짜인 틀 안에서 정해진 경로에 따라 과제를 정확하게 수행하는 일을 가르친다. 예술 전공이 아닌 학생들은 국어, 미술, 음악 시간에 수박 겉핥기로 잠시 창작을 접할 뿐이다.
성인에게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기관이나 서비스 업체는 극히 드물다. 악기를 가르치는 곳과 작곡을 가르치는 곳의 수를 비교해 보자. 글쓰기의 경우에는 너무 전문적인 기관(대학 문예창작학과)과 지나치게 초보적인 기관(구청 글쓰기 교실)이 드문드문 있는 정도다. 문예창작학과든 글쓰기 교실이든 등록할 때에는 주변 눈치를 무척이나 의식하게 된다. 뭔가를 창작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에 대해 현대사회는 나쁘게 본다기보다는 신기하게 본다. 남다른 예술혼과 번뜩이는 재능이 있어야 감히 도전할 수 있는 일로 여긴다. 그래서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몰래 쓴다. 더 많은 사람들은 글쓰기 자체를 그냥 포기해버린다. 예비 작가들이 문제가 아니라 현대사회가 문제다.
슬픈 일이다. 창작의 즐거움은 매우 독특하고 크기에 한계가 없는 듯하기에 더 그렇다. 음식은 대체로 비쌀수록 맛있지만, 창작의 기쁨은 도구의 가격에 별로 좌우되지 않는다. 대인 관계에서 얻는 즐거움과 달리 창작은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만족감을 준다. 스포츠와 달리 운동신경이 둔해도 괜찮고, 종교처럼 자아를 지우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온전하고 또렷하게 자신을 드러낸다는 면에서 인간적인 영웅이 되는 길이다. 대단히 평화적이기도 하다. 머릿속에 품고 있던 구상을 자기 손으로 정확히 현실에 구현하는 순간은 정말이지 짜릿하고 통쾌하다. 기존 작업이나 주변 여건의 영향을 받아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하지만 멋지게 결과물이 나온다면 그것도 재미있다. 들인 시간이 길고 이뤄낸 바의 규모가 클수록 흥분의 강도가 커진다.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친 작업을 마칠 때에는 엄청난 환희와 감격을 느끼게 된다.
창작의 욕망 억지로 누르면 어떻게 될까
첫 책이 나왔을 때에는 보름 정도는 구름을 걸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종이책이 처음 집으로 와서 처음으로 그 책을 만지는 날도 기쁘고, 최종 원고를 교정까지 마쳐 출판사로 보낼 때도 기쁘지만, 내 경우 제일 기쁜 날은 초고를 마치는 날이다. 이때의 성취감은 아주 단단하다. “이거 대단한 일이지?”라며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다. 대단한 일인 것이다. 책 한 권을 쓰면서 이런 성취감을 작은 규모로 여러 번 느낀다. 진도가 나가지 않던 챕터를 마쳤을 때, 꽤나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를 글에 잘 끼워 넣었을 때, 뿌듯하다. 어느 대목에서 막혀서 끙끙 앓다가 그럴싸한 발상이 떠오르면 어려운 퍼즐을 풀거나 바둑에서 묘수를 찾아냈을 때처럼 상쾌하다.
본능적인 욕구들을 채우지 못하면 몸이 신호를 보낸다. 그것이 고통이다.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않으면 속이 쓰리고 머리가 어지럽다. 화장실을 억지로 참으면 방광이 아파온다. 호감 가는 사람과 따뜻하고 우호적인 대화를 며칠씩 하지 못하면 옥시토신 분비량이 줄어들고 어두운 정서에 휩싸인다. 재미있는 영화를 한창 보는데 컴퓨터가 갑자기 꺼져버리면 답답해서 화가 치솟는다. 다 인간의 본성이다. 창작의 욕망을 억지로 누르면 어떻게 될까. 나는 현대사회에 만연해 있는 공허감이 바로 그 결과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지금 내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 그런 감각을 느끼지 못할 때 청년은 청년 위기에, 중년은 중년 위기에 빠진다.
고도로 분업화된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그 감각을 얻기는 매우 힘들다. 주어지는 일이 하찮고, 손댈 수 있는 범위가 좁다. 그러니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더 많은 권한을 얻는 게 답이라고? 아니다. 그것은 너무 돌아가는 길이고, 어쩌면 목적지로 가는 길이 아닌지도 모른다. 훨씬 더 빠르고 직접적인 해답이 있다. 창작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만들자. 공들여서 하자. 빨리 시작하자. 당신은 본능을 채우지 못해 굶주려 있는 상태다.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책 쓰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는 당장 착수하라고 권하고 싶다. 특별히 뭐 준비할 게 있나? 캔버스? 물감? 악기? 연주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된다.
▶책 한권은커녕 다소 긴 탐사보도 기사조차 읽기 버거워하는 시대, 카드뉴스를 넘어 50초짜리 동영상이 글자를 대체하는 시대에 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장강명 작가가 상상하는 ‘책 중심 사회’는 많은 이가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해 책을 쓰고, 책을 통해 의견을 나누는 사회다. 책 쓰기가 우리 사회에 왜 이로운지를 함께 모색해보기 위해 장강명 작가가 ‘책 쓰는 법’을 격주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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