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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교사와 아이들, 사진으로 여는 교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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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옥초 정혜란 교사

취미로 사진 찍어 나눠주다가

교실 수업에 적극적으로 활용

아이들 수업에 재미 붙이고 몰입해

주위 사물 놓치지 않고 관찰

스스로 사진집 낼 정도 성장

“친구들과 함께 추억 만들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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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옥초 4학년 3반 교실은 온통 사진으로 꾸며져 있다. 벽에는 에펠탑 등 세계적 관광지의 환상적 사진들이 A3 인쇄용지보다 크게 인화되어 걸려 있다. 교실 뒤 게시판엔 아이들 독사진이나 그룹으로 찍은 사진들로 꽉 차 있다. 책상 위에도 아이들 사진이 붙어 있다. 정혜란 선생님 반의 학생들은 이렇게 사진 속에서 꿈을 키워간다. “아이들의 예쁘고 행복한 표정을 찍는 데 주력해요. 많이 찍어서 되는 게 아니고 순간을 잘 포착해야 나오죠.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거 같아요.”

정 교사는 학교 누리집에 있는 학급 게시판에 사진 일기를 올리는 것으로 아이들의 하루를 연다.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아이들에게 양식이 될 글들을 사진과 함께 올려 대화를 이끈다. 일찍 집을 나온 아이들을 위해서 수업 시작 전에 글을 읽어주기도 한다. 아이들도 곧잘 사진으로 응답을 해온다. 한 아이는 사진에다 자신이 지은 동시를 곁들여 올리는 등 열성이 남다르다.

수업 시간에도 사진이 빠질 수가 없다. 국어 시간의 경우, 의견이나 설득의 단원에서는 공익 광고를 만들어 캠페인을 벌이는 과정을 한다. 주제를 정하고, 관련된 사진을 찍고, 포스터를 만들어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자신의 의견을 남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수학 시간에는 학교 밖으로 나가 삼각형을 찾아내 사진을 찍는다. 삼각형의 종류를 이해하고 실생활에서 어떻게 이용되는지 알아보는 과정이다.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니까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직접 사진을 찍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게 사진의 장점이다.

사진이라고 해서 특별히 과목의 제한은 없다. 수업 준비를 하다 이 내용은 사진을 곁들여서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사진을 이용한다. 과학도 지리도 역사도 가능하다. “사진을 가지고 수업을 하면 교과서로만 하는 것보다 이해가 쉬워지고 재미있어요.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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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취미를 살려 아이들 사진을 찍어 게시판을 꾸미거나 나눠주는 데서 시작했다. 그러다가 수업에 응용하기 시작했고, 그 양도 점점 늘어났다. 처음엔 아이들이 찍은 사진을 모으는 데만도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기능을 모르는 아이도 있고, 데이터의 양이 많은데다 학교에 와이파이가 없어 전송하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당연히 수업 진행이 잘 안 됐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모둠에서 하나의 폰만 골라 함께 쓰는 것이었다. 시간이 빨라졌고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를 배려하는 차원도 됐다. “사진 찍으려면 세심한 관찰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놓치기 쉬운 것을 깨닫게 되고 아름답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런 느낌을 아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수업에 도입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사진도 제법이다. 학급에 사진 동아리가 있는데, 사진을 찍고 시를 써서 <우리의 가을>이란 작은 책을 냈다. ‘2019년 9월과 10월 란토리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교사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뜻이다. 예전엔 아이들에게 사진 편집하는 방법 등을 알려줘야 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척척 해낸다. “사진을 오래 찍다 보니 꽃도 더 예뻐 보이고, 미웠던 동생도 예뻐 보이고, 개구쟁이 친구도 좋아 보여서 좋아요.”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교사 글쓰기 플랫폼인 ‘에듀콜라’와 교사 블로그인 ‘샘 스토리’에 ‘사진으로 꿈꾸는 교실’이란 제목으로 연재하고 있다. 사진의 기초와 응용까지 누구나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인기가 높다. 이젠 이런 특기를 다른 교사들에게 전달하는 일까지 맡게 됐다. 원격 연수 교육 프로그램을 맡았는데 현재 원고를 쓰는 중이고 올겨울 방학에 동영상을 촬영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은 내년 중반 전국의 교사들을 상대로 개설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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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사의 사진 경력은 19년이다. 그의 사진 스승은 아마추어 사진가인 아버지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사진을 많이 찍어주셔서 카메라와 친숙해졌고, 자신도 자동카메라를 들고 입문을 하게 됐다. 필름 카메라로 시작했는데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갈아탔다. 디지털카메라는 필름이나 인화지가 필요 없어 아주 많은 양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여태 찍은 사진이 10TB(테라바이트)에 이를 정도다.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보통 3MB(메가바이트) 크기인데,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그가 찍은 사진을 보면 전세계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아버지도 요즘엔 어떻게 하면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고 물어올 정도라고 한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때부터 매일매일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러 다녔어요. 많이 찍고 좋은 사진을 보면서 다시 찍는 작업을 계속했어요.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기 위해 빛과 구름을 보면 한자리에서 5시간을 기다리기도 해요.”

정 교사에겐 남다른 이력이 하나 더 있다. 대학을 두번 다녔다. 처음에는 의상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적성에 안 맞아 수능을 다시 치르고 교대에 들어갔다. 우연히 교직 과목을 이수하면서 어떤 교사가 되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초등학교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의 교직 경력은 9년차지만 갖가지 활동을 하느라 쉴 틈이 없을 정도다. 교사들의 사진 동아리를 운영하기도 했고, 풍물동아리를 5년째 이끌고 있다. 놀이모임에도 나가고 있고, 교육 마술 모임에 참여해 마술도 배우고 있다. 사진 전시회를 열겠다고 결심한 게 수년 전이지만 여태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름을 걸고 남다른 사진을 찍어서 전시하겠다는 고집 탓이다. 갑자기 제안이 들어온 연수 프로그램도 한몫했다. 내년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그동안 미뤘던 전시회를 꼭 열겠다고 다짐해본다.

“사진은 아이들이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쉽게 접할 수 있고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또한 영감이 풍부한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고 진로 교육의 기회도 된다고 생각해요.”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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