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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돛대도 없이 질풍노도 겪는 장애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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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ㅣ연탄샘의 십대들 마음 읽기

“벌써 이 병을 앓은 지 10년째예요. 제가 이 병 때문에 잃은 건 평범한 일상생활이에요. 친구들과 등교하는 거, 하교하는 거, 학원 같이 다니는 거, 학교에서 화장실 갈 때 같이 가는 거, 점심 먹으러 같이 가는 거, 매점 같이 가는 거, 쉬는 시간에 수다 떠는 거, 그리고… 혼자 돌아다닐 수 있는 거.”

10년째 근육병으로 투병 중인 14살 하늘이(가명)를 만난 건 한 장애인 재활 쉼터를 통해서다. 하늘이가 앓고 있는 근육병은, 온몸의 근력이 약화되고 마비가 오면서 호흡기나 심장 근육 기능까지 멈출 수 있는 치명적인 희귀 난치병이다. 그뿐만 아니라 근육병 환자들은 합병증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신체 장애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늘이를 포함해 청소년 8명과 만났는데, 모두 휠체어에 의지해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 둘 중 한쪽이 아프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도 아프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오랜 투병과 장애로 우울감이 높았다. 특히 자율성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청소년기에, 이들은 신체적 부자유 때문에 더욱 힘들어했다. 게다가 가장 필요한 또래와의 친밀한 관계 형성도 쉽지 않았다.

“애들이 밖에 나가서 축구나 농구 하는 걸 보면 저도 하고 싶어요. 하지만 상상으로밖에 할 수 없죠. 만약에 제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체력과 몸을 가질 수 있었다면…. 시험 끝난 뒤 노래방도 가고, 지하철 타고 시내도 나가보고,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도 해보고.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도 포기하지 않았겠죠.”(16살 바다)

근육병에 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기는 오해들도 있다. “척추장애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얼굴 근육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실 몇주 전에 쉼터에서 두번이나 울었어요. 누가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선생님들이 좀 웃으라고 말했을 뿐인데 눈물부터 나더라고요.” 15살 미소(가명)는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고, 눈도 잘 감을 수 없는 얼굴 근육 때문에 종종 오해를 산다. 그리고 상처를 받는다. 비단 근육병 청소년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장애 청소년들은 비장애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지만, 장애에 따른 제약 때문에 훨씬 ‘특별한’ 사춘기를 겪고 있다.

인권과 복지를 이야기할 때 장애인의 문제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라고들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법정 기념일로 지정한 4월20일 ‘장애인의 날’ 즈음이 되면, 장애인에 관한 이해도를 높이고 인식 개선에 나서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무슨 날에만 반짝 그런 주장을 들을 때면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날조차 없으면 주위에 장애인 가족이 없는 비장애인들은, 대부분의 장애인이 겪는 차별이나 제약, 그에 따른 심리적 고통을 잊고 살기 쉽다. 오늘(12월3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세계 장애인의 날, 돛대도 삿대도 없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힘겹게 겪어내고 있는 장애 청소년들을 한번쯤은 돌아봤으면 한다.

#사례는 내담자 보호를 위해 재구성했습니다.

한겨레

이정희 ㅣ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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