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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한파 속 뜨거운 열기’ 신인 배우들의 독백 경연 현장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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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저녁, 해가 지며 체감온도는 영하로 떨어졌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수많은 건물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부는 가운데 유난히 열기 가득했던 건물이 있었다. 45회 서울독립영화제(서독제)의 한 프로그램 ‘배우 프로젝트: 60초 독백 페스티벌’이 열리는 ‘아이러브아트홀’이었다.

독백 페스티벌은 ‘60초 길이의 독백 연기 실력’을 겨루는 자리다. 서독제 집행위원인 배우 권해효의 아내이자 배우 조윤희의 아이디어로 지난해 처음 열렸다. 신인 배우 발굴, 후배 배우 양성의 일환으로 마련된 프로그램으로 상금은 권해효가 사비로 마련했다. 올해는 배우 조우진과 함께 총 상금 600만원을 수여한다. 영상을 통해 지원을 받고 20여명을 추려 서독제 개최 기간에 본선을 진행한다. 지난해 1440여명, 올해 1260여명이 지원했다. 이날은 본선이 열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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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강남구 아이러브아트홀에서 열린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배우 프로젝트: 60초 독백 페스티벌’을 주최한 권해효(뒷모습)가 관객에게 페스티벌 관련 안내를 하고 있다.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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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28분 아이러브아트홀 2층 메인홀. 주로 피아노 독주회 등이 열리는 곳이라 홀은 약 300㎡ 크기였고, 무대는 가로 10m, 세로 5m 정도로 작았다. 행사 시작 30여분을 남기고 카메라 리허설이 진행 중이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순서에 무대에 나와 대사 한두 마디씩을 했다. 무대 오른쪽에 자리 잡은 권해효는 조명·음향 등을 점검하며 참가자들의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조금만 더 여유 있게…” “볼륨(목소리)은 실제 할 때는 조금 더 크게” “너무 급하게 나오실 필요 없다. 충분히 여유 가지시고 나오시면 된다. 원래 잘하던 느낌으로 편하게 합시다”.

리허설이 끝나고 행사 시작 진적까지 무대 뒤편 스크린에서는 본선 참가자들의 지원 영상이 상영됐다. 참가자들은 홀 뒤편에서 자신들의 영상을 지켜봤다. 자취방·골목길·야외 주차장·옥상·놀이터·어딘지 모를 흰 벽이 있는 실내 등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한 독백 영상이었다. ‘셀카’처럼 얼굴만 나오는 가까운 숏부터 삼각대를 이용해 전신이 나오는 숏까지 크기는 물론, 그 속에서 펼치는 연기·감정도 모두 달랐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열정은 비슷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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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강남구 아이러브아트홀에서 열린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배우 프로젝트: 60초 독백 페스티벌’에서 올해 ‘응원단장’으로 참가한 조우진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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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에 마련된 50여 객석은 심사위원과 지난해 수상자, 배급·제작사 등 독립영화계 관계자들로 가득 찼다. 사회를 맡은 권해효는 “배우로 살아가는 건 특별하고 어려운 일이다. 지금껏 견디는 것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이 행사를) 시작했다. 행사를 지속적으로 열고, 응원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올해부터 함께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호스트(주최자)로 같이 하려 했는데, 본인이 응원단장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며 조우진을 소개했다. 조우진은 1260여명의 지원 영상을 권해효와 함께 보며 본선 진출자를 가렸다. 3주 전 본선 참가자들의 연기를 점검하고, 조언해주는 워크숍도 함께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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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강남구 아이러브아트홀에서 열린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배우 프로젝트: 60초 독백 페스티벌’에서 첫번째 순서로 나온 홍의준이 독백 연기를 하고 있다.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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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의 조명이 꺼지고 무대 위만 환해졌다. 첫번째 배우 홍의준(35)은 무대 구석에 있던 의자를 중앙으로 가져와 앉으며 연기를 시작했다. 관객들은 행여나 배우들의 집중에 방해될까 조그마한 소리도 내지 않았다. 사랑을 고백하는 연기,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 연기, 옛 연인에게 화내는 연기, 상담하는 연기, 막막한 자신의 상황을 토로하는 연기, 가족에게 속을 꺼내 보이는 연기, 군대에서 후임에게 충고하는 연기 등. 기존 희곡이나 대본에 있는 대사부터 창작까지 다양한 상황의 독백이 무대에 올랐다. 60초가량의 짧은 연기였지만 배우들은 기쁨·절망·분노·한탄 등 여러 감정을 선보였다. 매번 참가자의 연기가 끝날 때 객석에서는 박수가 나왔고, 웃음도 터져 나왔다.

본선 참가자 23명의 연기가 끝나고 자리를 옮긴 심사위원들은 10여분간 토론을 이어갔다. 올해 심사위원은 배우 조윤희·조우진과 감독 변영주·민규동·강형철 5명이었다. 관객 평가도 합산돼 1~3등이 정해졌다. 1등은 영화 <박화영>(2018)을 각색한 독백을 선보인 김인경(26)이 수상했다. 2등은 이종호(25)와 이민수(33), 3등은 홍의준과 목규리(29)가 선정됐다. 변영주·민규동·강형철 감독이 지원영상만 보고 선정한 ‘디렉터스 초이스’상은 홍의준과 안스완(25)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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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강남구 아이러브아트홀에서 열린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배우 프로젝트: 60초 독백 페스티벌’에서 1등에 선정된 김인경이 독백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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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이 끝난 뒤 조우진은 ‘응원하러 왔다 응원을 받고 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조우진은 “따뜻한 손길, 마음이 오가는 자리 초청돼 영광이었다”며 “응원해주러 왔는데 스스로 자극을 받았다. ‘정말 정성을 담아 연기하겠다’ 제 스스로에게 객관적 시선을 가지게 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권해효는 “연기는 보는 사람마다 기준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연기를 직업으로 하려는 이들은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더 빨리 지치기 쉽다”며 “수상 못했어도 1200여명 중 이 자리에 오른 것이니 모두에게 ‘잘하고 있는 거야’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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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강남구 아이러브아트홀에서 열린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배우 프로젝트: 60초 독백 페스티벌’ 본선 참가자 전원이 심사위원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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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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