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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벌이'보다 '씀씀이'...건설업계, 재무통 중용하는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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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임원인사서 재무 라인 위상 높아

'내실 경영'에 '리스크 관리' 중요성 방점

"보장된 이익 쫓는 '숫자 경영'"…불편한 속내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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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인준 기자 = 연말 건설사들의 정기 임원인사가 속속 발표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도 재무 전문가들의 약진이 돋보인다.

업계에서는 경기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내실 경영에 초점을 맞춰 인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일부는 아쉬운 속내를 비치기도 한다. '숫자' 중심으로 전락한 건설 업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4일 최근 건설사들이 발표한 신규 임원 명단 등을 보면 재무 라인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한화건설의 경우 최고재무책임자(CFO) 유영인 재무실장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유 부사장은 한화건설이 해외시장 손실로 생긴 누적 적자로 추락했던 신용등급을 올해 A등급으로 회복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재무담당 임원이 부사장까지 오른 것은 앞서 이재용 부사장 이후 9년 만이라는 점에 건설업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호반그룹도 우리은행장 출신인 최승남 부회장을 그룹 총괄부회장에 임명해 건설업계 '재무통 전성시대'를 실감케 했다.

최 부회장은 지난 2015년 호반그룹에 합류한 이후 금호산업, 대우건설 등 굵직한 인수합병(M&A) 업무를 진두지휘해왔고, 그 결과 2016년 울트라건설, 2018년 리솜리조트(현 호반호텔&리조트) 등은 실제로 인수하는 데 성공해 그룹의 사업 다각화의 키를 쥔 핵심 인물이다.

대우건설도 올해 역대 최초로 외부에서 CFO를 직접 모셔오는 등 재무 관리에 방점을 찍었다.

대우건설이 산업은행에 인수된 이후 산은 출신의 인사들이 CFO로 내려온 것을 제외하면 비대우건설 출신이 CFO를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항기 부사장은 현대자동차 재경본부, 현대그룹 기획총괄본부 상무, 현대증권 경영기획본부장 등을 두루 거쳤으며, 지난 8월 부임한 이래 대우건설 조기 매각을 위한 회사의 기업 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건설업계의 재무통이 중용되고 있는 것은 비단 올해뿐은 아니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이미 지난해 인사를 통해 최고경영자(CEO)에 재무관리 능력이 검증된 이영호 건설부문장 사장, 박동욱 사장을 각각 임명한 바 있다.

이 사장은 삼성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장 등 관리 부분은 물론 삼성물산 CFO까지 두루 거쳐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박 사장의 현대자동차 재경사업부장, 현대건설 재경사업본부장 출신의 전형적인 재무통이다.

HDC현대산업개발도 지난해 말부터 그룹내 대표 재무 전문가인 김대철 대표에 회사를 맡겨 지난해 부동산114에 이어 최근 아시아나항공까지 M&A 전반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재무 라인이 뜨는 배경으로 건설시장 전망이 워낙 불확실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이 버는 것'보다 '적게 쓰는 것'에 무게 중심을 두는 '내실 경영'이 최근 건설기업들의 화두라는 것이다.

이미 많은 CEO들이 내실 경영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해왔다. 쌍용건설 김석준 회장은 올해 초 "적은 이익이라도 십시일반 벌고, 관리비는 줄이는 불황대비형 사업구도가 일반화되는 '뉴노멀 시대'가 올 것"이라며 '내실'을 기업 경영에 최우선 가치로 삼을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여기에 '리스크 관리'가 건설기업 경영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된 점도 한 몫한다. 많은 건설기업들이 사업 수주는 물론 신사업 진출, 인수합병(M&A) 등 사업 다각화 등 기업 경영 전반에 걸쳐 리스크 검토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 해외 사업에서 생긴 손실을 메우기 위해 많은 건설사들이 장기간 어려움을 경험한 이후 생긴 절차다.

앞으로도 경기 불확실성은 높을 수밖에 없고, 그동안 건설사들의 이익을 뒷받침해온 주택시장의 경기도 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어 재무 라인의 부상은 지속될 전망이다.

다만 업계 내에서도 이 같은 세태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내비치기도 한다.

건설업은 산업 특성상 워낙 변수가 많을 수밖에 없는 데, 위기관리 능력이 강조되는 최근의 상황은 사업 수주 등에서 회사가 더욱 보수적인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건설사들은 이익이 보장된 사업에만 혈안이 돼 있다. 최근 혼탁한 수주전으로 시공사 3곳이 모두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된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의 경우, 공사비만 약 2조원에 달한다. 그러다보니 현행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이주비 무이자 지원, 고분양가 보장, 임대주택 제로, 혁신설계 등 과도한 경쟁이 난무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반면 올해 사업에 어려움이 큰 해외 시장 개척에는 소극적이다. 이날 현재까지 해외수주 총액은 180억9802만달러에 그쳐 전년(322억달러) 대비 반토막이 났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 때 과감한 '도전정신'의 대명사에서 '숫자 경영'으로 전락한 것이 건설업계의 현주소"라면서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불가피한 부분도 있지만 아쉬움도 크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ijoin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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