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6 (월)

생명나눔 전시회서 오빠에게 쓴 편지 소개한 왕수현양 “누군가 오빠의 장기로 살고 있어, 오빠도 살아 있는 거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버지 통해 오빠 이야기 듣고

의사가 돼서 남 돕는 것이 꿈

장기기증운동본부 8일까지

교육참여 수기·동화책 등 전시

경향신문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왕수현양(10)이 4일 서울 시민청에서 열린 ‘두근두근 심장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 전시회에서 전시에 참석한 초등학생들과 단체사진을 찍으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왕양은 2010년 뇌사 장기기증으로 5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난 왕희찬군의 동생이다. 강윤중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들은 오빠 장기를 갖고 살아가고 있는 거니까. 오빠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게. 건강하게 잘 살아.”

초등학생 왕수현양(9)은 세상을 떠난 친오빠 왕희찬군에게 편지를 보냈다. 왕군은 네 살 때 폐렴 진단을 받았다. 감기인 줄 알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던 중 호흡곤란으로 급성 뇌사상태에 빠졌다. 왕양이 한 살 때 일이다. 왕군은 장기기증으로 다섯 명에게 생명을 전하고 세상을 떠났다.

왕양은 오빠와 어릴 적 헤어진 탓에 추억이 별로 없다. 친구들이 형제자매가 있는지 물을 때마다 오빠 이야기를 한다. 장기 기증을 다룬 동화책 <두근두근 심장이의 비밀>을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에게 읽어 보라며 소개했다. 왕양은 올해 처음 일부 초등학교에서 생명나눔 교육이 실시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학교에서도 오빠처럼 생명을 나눈 사람들에 관해 알려주는 시간이 생겼다”며 “친구들과 장기기증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왕양의 꿈은 의사다. 아픈 사람을 살리고,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을 돕고 싶다. 왕양이 말했다. “의학에 관심이 많아요. (의사라는 직업에) 끌려요.” 아버지 왕홍주씨(54)는 왕양이 어린 시절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난 오빠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왕씨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게 있다. 오빠를 숨길 이유도 없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니까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수현이에게 알려줬다”며 “어린 나이지만 그런 일들이 보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운동본부)가 4~8일 서울 시민청에서 생명나눔 전시회를 연다. 운동본부는 올해 서울 영훈초등학교를 비롯한 5개 학교에서 심장이식 과정을 담은 동화책을 교재로 생명나눔 시범교육을 실시했다. 장기기증 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수기와 장기기증 내용을 담은 동화책 등을 전시했다.

이날 영훈초등학교 학생 30여명이 행사에 참석해 장기기증인과 이식인에게 작성한 편지를 소개했다. 학생들은 2006년 일면식도 없는 조수아양에게 자신의 간 일부를 기증한 박광은씨 사연을 듣고 두 사람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수아 언니,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걸 축하해. 어느 누구보다 밝고 행복한 언니가 되어줘” “박광은 아저씨, 당신은 고마운 사람입니다” “저는 간 떼어내는 것이 무서워서 못할 것 같은데요. 정말 대단하셔요. 앞으로도 건강하세요!” 같은 인사를 담았다.

중학생 때 심장 이식을 받은 이동규씨(31)도 이날 전시회에 참석했다. 이씨는 열다섯 살 때 학교 체력장에서 오래달리기를 하다 쓰러졌다. 그날 선천적으로 심장이 안 좋다는 사실을 알았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집에 땀을 뻘뻘 흘리며 1시간이 지나 도착한 날이었다. 기적적으로 심장을 이식받고 건강을 회복한 이씨는 지난달 결혼식도 올렸다. 이씨는 “처음에 아팠을 땐 ‘나한테만 왜 이런 일이 생기나’ 원망도 많이 했다”며 “오늘 전시를 보니 평범한 일상을 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기증인의 사랑 덕분에 제가 두 번째 삶을 살게 돼 감사하다”고 전했다

임혜진 운동본부 간사는 “생명을 경시하는 폭력 게임, 문화에 많이 노출되는 아이들이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배우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신문 최신기사

▶ 기사 제보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