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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기자메모]포용이 아닌 포괄성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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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지난 3일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연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구하고 있는 ‘포용적 성장’과 방향이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그들은 더 적극적인 재정지출과 더 강력한 공정경제를 위한 정책을 제언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은 ‘포용성장’의 선도국가이자 OECD의 모범생처럼 보인다. 하지만 OECD가 강조하는 ‘포용성장’의 내용 가운데 한국 정부가 시민들에게 잘 알리지도 않고 제대로 실현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경제를 움직이는 한 축인 ‘노동’을 더 강력하게 조직화하고 위상을 강화하는 노력이다.

기획재정부가 2012년 OECD가 추구하는 ‘인클루시브 그로스(inclusive growth)’를 ‘포용성장’으로 번역했을 때부터 예견된, 혹은 의도된 방향이었는지도 모른다. 영어 단어 ‘인클루시브(inclusive)’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등의 뜻을 담고 있다. 모두가 동등한 시민적 권리를 지닌 구성원으로서 성별, 학력, 인종, 직종 등과 무관하게 성장의 과실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박이대승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장에 따르면 우리말 번역으로는 ‘포괄’에 가깝다. 반면 정부가 선택한 번역어인 ‘포용’은 강자가 약자를 감싸준다는 의미다. ‘포괄’이 당사자의 권리를 강조한다면 ‘포용’은 시혜적 뉘앙스가 깃들어 있다.

OECD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복지 지출을 늘리는 일뿐만 아니라 노조의 조직력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일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정부가 정하는 대신 노사 협상으로 결정하도록 둔다. 이런 방식이 ‘포괄’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공공기관마다 목표치를 제시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했다. 정부가 이해하는 포용성장이다. 그러나 경제위기론이 불거지자 최저임금 체계는 느슨해졌고, 노동자가 ‘약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은 거부하고 있다.

‘주 52시간 노동’ 적용도 미뤘다. 정부가 포용성장을 위해 내놓은 정책들이 상황과 여론에 따라 땜질이 반복되며 원칙은 사라지고 있다. ‘포용’이란 틀의 한계이다. 집권 4년차인 내년 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은 ‘포용성장’보다는 ‘포괄성장’이어야 한다.

박은하 | 경제부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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