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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손수현의 내 인생의 책]④실연의 박물관 -아라리오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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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실연에 대하여

경향신문

서른 살이 되던 해, 갑작스럽게 소중한 존재를 잃었다. 너무 빨리 찾아온 이별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눈앞이 깜깜해진다는 말을 실감했고 고통스러운 상태가 지속됐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모두 해결해준다는 말을 믿기 어려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니 거짓말처럼 3년이 지나 있었지만, 그날을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이 아리다.

처음 이 책 제목과 마주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했다. 실연과 박물관. 어울리기 어려운 두 단어의 조합 같았다. 제주에 위치한 아라리오 뮤지엄에서 열린 ‘실연에 관한 박물관’의 작품들을 엮었다는 이 책은 내가 겪었던 모든 실연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스르륵 넘겨본 페이지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사연들이 담겨 있었다. 꼼꼼히 읽어보았다간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아 재빨리 덮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책을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며칠을 책상에 두었다가 또 어느 날 불쑥 첫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다 읽어갈 무렵엔 궁금증이 생겼다. 나와 이별한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통해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만약 그런 물건이 있다면 서둘러 없애버렸을까, 아니면 어느 한구석에 그냥 두었을까.

아마도 ‘실연에 관한 박물관’은 후자를 위해 마련된 전시인지도 모르겠다. 가슴 아픈 첫사랑의 편지, 가난한 시절 사용했던 수저세트, 누군가와 함께 떠났던 여행 티켓처럼 사연이 얽힌 물건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저릿해지니까. 나는 ‘실연’이라는 단어에 유난히 취약한 사람이지만, 이 책에 담긴 진솔한 이야기들이 나를 조금은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도 실연을 피해 갈 수 없으므로. 실연은 아픈 것이지만, 사랑의 추억까지 아프게 기억되길 누구도 바라지 않으므로.

손수현 작가 겸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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